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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16. 2015

얼굴 위에 내려 앉은 하루

하루가 내 얼굴 위에 묻어있는 기분이야

쓰이고 쓰였던 문장과 수사는 안전하지만 식상하다. 노동의 고됨을 말하는 것은 역시 식상하지만, 그것을 구두 뒷굽이나 때가 탄 셔츠 깃, 혹은 물 빠진 청바지와 흙 묻은 워커로 말하는 것은 더욱 식상하다. 화면 가득 그렇게 쓰인 활자는 디지털 휴지통으로 직행해야 한다. 또는 인쇄한 다음 그 종이 위에 코를 풀어야 한다. 언젠가 문장 수업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야, 꼭 여기서 호날두가 프리킥을 차야 돼? 차라리 미하일로비치라고 하든가 네이마르라고 하지?”

출근 4일째에도 어김없이 퇴근과 밤은 찾아왔다. 아침에 빗은 가르마는 엉클어졌고, 주말 동안 테팔 다리미로 다린 빳빳한 셔츠는 이게 진짜 모습이라는 듯 마음대로 구겨졌다. 그 상태로 숙대 입구 스타벅스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사실 일주일 만이기는 하지만.

굳이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나의 고됨은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쳐다보는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했다. 그러려고 만난 거니까. 그게 #소통… 아니다. 관두자.

“일은 할 만해?”

뻔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궁금하기 때문이겠지. 할만하지. 할만하다. 10개월 동안 방에 누워 천장만 쳐다보다 몇 번의 절차를 거쳐 이제는 매일 갈 곳이 생기고 돌아올 곳이 생겼으니까. 바닥이 홍창인 구두 하나를 매일 신다 보니 처음에는 발 디디기도 어색했는데 점점 익숙해진다. 분홍색(이었던) 홍창에는 돌멩이 조각 몇 개가 박혀있다.

“하루가 내 얼굴 위에 묻어있는 기분이야.”

뻔한 질문에 덜 뻔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했다. 순간 사무실에 두고 온 갸스비 오일시트가 떠올랐다. 노동의 고됨은 곡괭이나 삽, 또는 척추 측만증이나 터널 증후군으로도 말할 수 있지만, 얼굴에 가득한 유분도 노동의 고됨이다. 때로는 얼굴 위에 하루가, 2호선 전철이, 사무실의 건조한 공기가 묻거나 내려앉기도 한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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