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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Dec 19. 2015

동그란 허리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앉는 방법

"바른 자세로 앉아라."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말입니다. 아버지는 제 자세에 대해 늘 한마디씩 했어요. 퇴근하고 오셔서 방문을 한 번 열어보시고는 "아버지 왔는데 인사도 안 하나?" 그리고 꼭 그 말을 덧붙이셨어요. "똑바로 앉아서 해라." 그럼 저는, "네에~" 허리에 한번 힘을 주고 의자를 당기는 시늉을 했습니다.

제가 책상 앞에 있을 때만 그러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소파에서 TV를 볼 때도 그랬어요. 자꾸 그렇게 눕고 기대면 어디가 어떻게 된다나. 소파는 편하게 기대라고, 그러라고 마루 한가운데 자리를 저렇게 많이 차지하게 뒀는데 그게 안 된다니. 푹신한 소파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건 면접장에서 의자에 허리를 늘여서 기대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모양인데 말입니다.

학창시절 오래 앉아있다 보면 허리고 등이고 몸이 뻐근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꾸 자세 탓을 했어요.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자세를 고쳐서 바로잡아 앉아봤는데. 똑같았어요. 알고보니 그건 의자 때문이었습니다. 불편한 의자. 배신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동안 의자를 바라봤었습니다.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그때도 인체공학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잘 몰랐지만, 그 의자는 탄성 좋은 스프링 같아서, 앉아있는 사람을 금방 튕겨낼 것 같은, 그리고 포근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등받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새 의자를 사지는 않았습니다. 집에서 공부를 못하겠다는 핑계가 되어 좋았거든요. 독서실이나 집 근처 도서관을 다니면서 다른 학교의 여고생들도 만나고 친구랑 잡지의 섹스 칼럼을 뒤적이며 노닥거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네요. 대학에 온 후에는 의자가 더 필요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어깨에 뻐근함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내 방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고작 한두 시간이 한계였으니까요.

좋은 의자가 다시 갖고 싶어진 건 최근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어깨가 아팠어요. 목도 당기고, 등과 허리도 뻑적지근 하더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을 온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었습니다. 어깨는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 힘쓸 일 없이 축 늘어져 있었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무거울까요.

이번엔 이 고통이 의자 때문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습니다만. 눈이 가네요. 용도를 고려하면 책상 의자가 더 쓸모 있겠지만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좋겠습니다. 지금은 허리를 펴서 앉고 싶지가 않아요. 몸에 힘을 다 빼고 여기에 둥그렇게 굽히고 앉으면. 아마 아버지도 생각을 달리하실 거예요.

아, 이건 프리츠 한센에서 나오는 무려 수천만 원짜리 동그란 의자입니다.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1902-1971)의 에그 체어. 이건 예술작품이기도 하니까 가격은 생각하지 않도록 해요. 대신, 검색해보면 저렴한 카피 제품이 꽤 많아요.

Egg chair by Arne Jacobsen for Fritz Hansen
REPUBLIC OF Fritz Hansen




가격 : 5,000 - 6,000유로. 색깔별로 다 다름
          카피 제품은 50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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