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실물이 더 멋있다고 했어요
저의 첫 카메라는 fm2였어요. 음, 정확히 말하면 처음이자 마지막 카메라였죠. 지금은 없으니까요. fm2가 어디 카메라더라. 찾아보니 니콘이네요. 이렇게 몰라서야 이래 봬도 보도사진학회 출신이라고 어디 가서 얘기나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냥 조용히 있어요. 암실에서 수다 떨고 잠만 잤거든요.
생각해보니 저는 정말 사진이랑 친하지 않았어요. 지난 추석에 엄마 집에 내려가서 오랜만에 앨범을 찾아봤는데 미취학 아동 이후의 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무심한 엄마, 아빠 덕분에 여전히 뷰파인더 넘어 제 모습은 어색한 미소뿐이에요. 사진발이 안 받는다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너는 실물을 봐야 멋있다고 했어요. 음,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했잖아요. 저는 이래 봬도 보도사진학회 소속이었다고요. 그러니까 대학에 와서 카메라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친구들이 다 카메라 얘기를 했으니까요. 그래서 물었어요. 어떤 카메라가 무난하냐고. 친구들이 이것저것 얘기해줬지만, 모르겠어요. 그냥 엄마 집에서 놀고 있는 fm2를 가져왔어요. 그리고 한 2년 동안 같은 자리에 인테리어 소품처럼 놓아두었죠. 그래도 괜찮았어요. 카메라를 보곤 귀여운 여자애들이 너 사진도 찍을 줄 아느냐며 눈을 반짝거렸거든요. 음, 아무 말도 안 했죠 뭐.
카메라를 구경하던 귀여운 여자애들이랑 놀다보면 그렇게 되는 걸까요? 왜 그렇게 돈이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락 페스티벌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팔기로 했어요. 근데 제가 뭘 알아야죠. 친한 형한테 좀 팔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형은 제 카메라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집에 이런 카메라를 두고 어쩌면 한 번도 사진을 찍어 볼 생각을 안 했느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그건 우리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유전이야’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혼자 웃었어요.
형이 그냥 팔기는 아까우니까 마지막으로 사진이나 찍어주겠다고 했어요. 네, 그 형은 돈 버는 거 빼고는 다 할 줄 아는 형이었거든요. 갑자기 필름을 사오겠다고 나가더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왔어요. 뭐든지 다 할 줄 아는 형이니까 사진도 멋있게 찍어줬어요. 누워있는 내 발. 그리고 그때, 피닉스 선즈 져지를 입고 있었는데 농구에 미쳐있는 소년처럼 찍어줬어요.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보았는데. 그 때만큼은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았어요.
누군가 나를 기록해 주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으니까, 나도 누군가를 기록하고 싶을 때 이 카메라가 필요하지 않을까. 막상 팔려니까 좀 고민이 되긴 했었나? 음, 모르겠어요. 근데 아무리 봐도, 저는 실물이 더 멋있거든요. 그리고 그해 락 페스티벌은 정말 좋았어요.
음, 왜 이런 얘기를 시작했냐면, 참 예쁜 카메라를 찾았거든요. 라이카 ‘M3’.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아주 명기래요. 그 M3가 나온 지 60년이 지났대요.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건 스페셜 에디션. 그러면서 뭐 또 스펙이 어쩌고. 근데 저는 그런 거 관심 없어요. 말했잖아요. 예쁜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디지털카메라인데 스크린이 없어요. 그러니까 사진을 찍으려면 무조건 뷰파인더로. FM2로 사진을 찍던 그때처럼.
뭐든지 잘하는 그 형한테 이 카메라 쥐여주면서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고 싶네요. 그럼 사진으로 남은 제 모습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