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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Jan 08. 2016

북유럽 사람들은 무엇을 먹나요.

vifa의 스피커로 시규어로스를 듣는 맛

시규어로스, 라디오 디파트먼트, 켄트 같은 북유럽 밴드 음악을 줄곧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지만 공통된 정서가 있었거든요. 음악을 들으면서 피요르드나 만년설을 떠올리게 되는 건 특유의 정서 때문인지, 빈곤한 세계 지리 지식으로 인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파는 핫도그가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꽃보다 청춘에서 봤거든요.

이케아 매장에 간적이 있습니다. 라디오 디파트먼트 음악이랑 만년설을 떠올리면서요. 근데 라디오 디파트먼트가 스웨덴 맞나? 핀란드 아니야? 이케아는? 뭐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주상 복합식 건물 지하에 있던 이케아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애초에 그런 대화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알프스 산맥을 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등산복 차림 아줌마들이 카트에다 반듯한 휴지통과 화장실 매트를 주섬주섬 담고 있는 모습은 여지없는 한국, 광명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묘한 이질감의 대열에 순식간에 합류했습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수건 몇 장과 휴지통, 매트리스 커버를 샀습니다. 손에 닿는 북유럽을 두고 빈손으로 돌아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집에 와서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고, 생각하던 자리에 휴지통을 놨습니다. 서울에 있는 원룸에 북유럽을 끼얹었더니 마치... 뭐랄까... 그냥... 그래봤자 원룸아니겠습니까? 여지없는 한국, 서울이었습니다.

이케아 휴지통에 두 발을 걸쳐놓고, 저의 큐브와 일만 광년 쯤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가구 카탈로그속 유토피아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설명을 보니 무선 스피커라네요. 스피커 이름도 무려 코펜하겐. 또 북유럽이네. 80년 역사의 덴마크 스피커 제조사 Vifa가 만든 몸에, 역시 덴마크에 있는 원단 제조사 Kvadrat에서 만든 그릴을 덮은 이 크고 아름다운 물건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맴돌았어요. '얘네들은 도대체 뭘 먹고 이런 거 만드는 거야?'

그 친구들도 빅맥 먹고 와퍼도 먹겠죠. 그건 그렇고, 이 스피커로 시규어로스 틀어놓으면 방 안에 황량하면서도 건조하지만 적막한 평화로움이 맴돌게 될까요? 제게 북유럽은 그렇거든요. 꽃보다 청춘의 새로운 여행지가 아니라요.

가격 : 899유로(이거 그럼 한국 돈으로 얼마예요?)

사진 출처 : http://www.vifa.dk/#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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