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식으로 가득 찬 세상 그리고 넥쿠션
애인한테 선물을 해요. 사랑하니까 내가 열심히, 종종 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아낌없이 써요. 애인은 곧 비행기를 열한 시간씩 타고 런던으로 갈 거예요. 그 시간 동안 저는 조금만 밖에 서있어도 볼이 빨개질 만큼 추워진 한국에서 열심히, 종종 안 열심히 일하고 있겠죠?
마음이 슬프고 쓸쓸했지만 꾹 참고 선물을 샀어요. 무인양품으로 또박또박 걸어가서 목베개를 찾았어요. 맨질맨질한 것, 보들보들한 것이 있어서 보들보들한 걸로 골랐죠. 또각또각하는 벨트가 있어서 캐리어에 걸 수도 있어요. 애인은 캐리어에 목베개를 예쁘게 걸고, 인천공항을 뚜벅뚜벅, 히드로 공항을 터벅터벅 걸어가겠지요? 야무지게 포장된 목베개를 들고 애인을 만났어요. 우리는 삼 주 동안 못 볼 거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애인과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에요. 저는 애인의 얼굴을 살뜰히 바라봤어요. 내일 떠나는데 숙소 예약을 못했다며 스페이스그레이 컬러의 아이폰6s만 바라보고 있는 애인의 얼굴을요. 애인은 짐도 안 챙겼고 회사에도 들러야 하고 숙소도 알아봐야 한다면서 한 시간 걸려서 온 제게 한 시간도 안 돼서 가자고 해요. 응, 알겠어. 잘 다녀와! 하고 삼성역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었어요.
고개를 다시 돌리니까 애인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어요. 옛날 애인도 지금 애인도 다 천하의 개자식들이에요. 개자식으로 가득 찬 세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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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식들에게는 과분한, 무인양품의 푹신 넥쿠션
2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