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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욕의왕 Nov 25. 2015

소설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하여

김영하의 밀회, 백산 안경 mayfair

 '10월. 마크트플라츠에 떨어지는 햇빛은 어딘가 여성적인 데가 있습니다.' 김영하 단편소설 <밀회>의 첫 문장입니다. 소설 속 남자는 낯선 도시 풍경을 묘사하며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쓸쓸한 남자가 짧은 시간 만에 정을 붙인 장소는 안경점입니다. 안경을 맞추는 일은 얼핏 섬세한 과정을 거칠 것 같지만, 간단합니다. 말도 몇 마디 필요 없습니다. 테를 고르고, 쓰고 있는 안경을 내밀며 같은 도수로 해달라고 한 뒤 새 안경을 쓰고 나오면 됩니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안경점 모습에서 남자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낭만적이긴 하지만, 굳이 외국에 가서 안경을 맞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김영하가 묘사한 세계에서는 남대문에 가서 값을 흥정하거나,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안경테 제품번호를 가물가물 떠올리며 최저가 검색을 하는 과정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카드 청구할인이나 신규 구매고객 쿠폰을 적용했다고 해서 뉴욕에서 날아오는 안경테에 구질구질한 일련의 과정이 새겨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인터넷 샵이나 소매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안경이라면 어떨까요. 일본의 '백산 안경(hakusan-megane)'은 동경에 넷, 오사카에 하나 총 다섯 개의 직영점만을 운영합니다. 택배 주문도 받지 않고, 예약 판매도 하지 않습니다. 1883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백산 안경의 mayfair 모델을 즐겨썼던 존 레논도 직접 와서 안경을 샀겠지요.

물론 '백산 안경'이라고 검색만 해도 구매대행 업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만약에 이 안경을 사게 된다면 직접 가서 사고 싶네요. '이걸로 주세요.', '도수는 똑같이 해주세요.' 같은 회화를 좀 연습해가서요.

가격 : 모델마다 다르지만 대략 3만 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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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hakusan-megane.co.jp/
http://cantfooltheblues.tumblr.com/post/42668543496/john-lennon-mayfair-sungla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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