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욕의왕 Nov 29. 2015

Antifreeze

유니클로 히트텍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아.” 중의적인 말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보통 글로 쓰인 문장에 비해 말은 오독의 여지가 적다. 하지만 여자의 희미한 억양은 판단을 흐리게 하기 충분했다. 아마 그 말을 한 곳이 유니클로 매장 안의, 히트텍 판매대 앞이 아니었다면 나는 말뜻을 괜히 되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게. 올겨울에 히트텍 없으면 다 얼어 뒤지나 봐. 나도 하나 살까?” 되묻는 대신, 위악적으로 대꾸했다. 여자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 역시 살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었다. 만나서 한 거라곤 돈 쓰는 일뿐이었으니까. 여자는 만나자마자 자라 매장으로 들어가 육만구천 원하는 에나멜이 반짝이는 납작한 로퍼를 집어 들었고, 한 장에 만팔천 원하는 영화 티켓 두 장으로 영화를 보고, 사천백 원짜리 커피를 마시고는, 유니클로에 들어와서 살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나 감정의 교류 같은 것들이 결국엔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라면 영수증은 손에 쥐어지는 일종의 증거 같은 것이었다. 잘 구겨지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

 타인의 소비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누군가는 지금도 백억 원짜리 그림을 산다. 언젠가 만났던 의대생 여자는 의사들의 월수입에 관한 내 부정확한 추측에 대고 말했다. “오빠, 저 고작 그 정도 벌려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 한 장에 만구천구백 원짜리 내의를 사려는 사람들의 대열을 보며 위악을 부릴 게 아니었다. 소비에 관대해지자. 소비는 아직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을 뿐인, 당연한 욕망이다.

 슬픈 것은 본 것, 들은 것, 갖고 싶은 것은 많은데 지갑에 심심하냐고 묻는 지폐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명백히 참인 명제다. 채워지지 않은 장바구니나 해소되지 않은 욕구는 가끔 엉뚱한 데로 튄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기도 하고. 그렇다. 아 물론 히트텍을 살 돈은 있다. 몇 장을 사느냐가 문제지만.

사진출처
uniqlo.com

가격
상의 24,900원
하의 19,900원

작가의 이전글 서늘한 휴일의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