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국수 한 그릇의 위로
덥고 더운 요즘이지만
베트남 중부지방 다낭에는 우기라는 제법 쌀쌀한 계절이 있다.
우리나라의 가을에서 겨울에 해당되는 11월부터 1월 말까지는 다낭은 우기다
한국에서 관광으로 잠시 오신 분들은 이 정도 추위도 추위냐며
코웃음을 치시겠지만
짧은 3박 5일의 일정을 다 채우기도 전에 그분들도 겉옷을 찾는다
날씨가 좋은 날엔 해가 쨍해서 수영도 가능하지만
우기 때는 보통 해가 없다.
휘몰아치는 바람도 곧잘 불어오고
하루 종일 소나기처럼 비가 퍼붓는 날,
난방은커녕 단열도 제대로 안 되는 동남의 실내에 있다 보면
적응 안 되는 스산한 추위가 뼈를 사무치게 한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바로 반깐 한 그릇이다.
반깐은 우리나라로 치면 우동면 을 넣어 만든 쌀국수인데
면도 종류가 많다.
그저 쌀국수를 조금 쫀득하게 해서 우동면 사이즈로 먹는 반깐이 있고
타피오카가 들어가 그 쫀득함이 배가 되는 그 면은 식감면에서 아주 우수하다.
중국납짝 당면의 쫀득함을 사랑하는 나는 당연히 후자의 반깐을 사랑한다.
음식의 천국답게
반깐 종류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보통은 반깐 까록, 반깐 짜까, 반깐 꾸어 처럼 뒤에 어떤 이름이 붙는가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진다.
반깐의 기본 베이스 국물은 오뎅탕 과 꽃게탕의 중간 정도의 맛을 가진 붉은색 국물이다.
돼지의 뼈도 국물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향기는 해산물 향이 난다.
그래서일까 가볍지 않은 국물은 시원한 맛과 조금 진한듯한 오뎅향이 아주 감칠맛이 도는데
내용이 바뀌면 당연히 이 국물 맛도 살짝씩 달라진다.
베트남 사람들의 최애 반깐은
반깐 까록 으로 생선을 넣어 먹는 반깐인데
우리나라 동태탕처럼 생선과 시원한 맛을 내는 채소 그리고 약간의 베트남 어묵과 경우에 따라 메추리알을 하나 띄워주고
마무리는 고수와 쪽파
그리고 취향에 따라 베트남 고춧가루 와 피시소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베트남 반찬 양파와 당근 그리고 고추를 넣은 식초 장아찌를 가감해서 먹는다.
고춧가루는 베트남 고추를 우리나라 굵은 고춧가루처럼 만든 것이 한 스푼만 넣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힐 만큼 얼큰한 국물 맛을 맛볼 수 있다.
가끔 이 고춧가루를 피시소스와 단맛이 나는 물엿 같은 액체를 섞어 만든 양념을 넣어서 먹는 집도 있는데
내 입맛에는 이 고춧가루가 딱이라
물 고춧가루 양념 만 준비되어 있는 집에 가면 살짝 서운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베트남 어묵
모양은 손으로 꼭 쥔 모양이거나 길쭉한 핫바 모양 그리고 두부 모양으로 많이 파는데
그 맛이 아주 예술이다.
부드럽게 만드는 곳도 있지만 보통은 속이 꽉 차서 우리나라의 어묵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씹는 맛도 더 찰지다.
향도 좀 더 진한 생성향이 나고 알알이 박혀있는 통후추가 맛의 정점을 찍는다.
반깐 짜까~ 는
단순하게 반깐육수에 국수를 넣고 이 베트남 어묵을 먹기 편하게 썰어서 넣어주는데
가격도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입에 맴도는 얼큰한 어묵과 생선의 향이 아주 끝내준다.
반깐 하이산은 제법 고급 요리로 해산물이 들어간 반깐
반깐 꾸어 는 게살을 넣고
반깐 똠은 새우가 들어가 있다
이외에도 염소고기, 돼지고기, 고기와 해산물이 적절히 섞여있는 반깐 그리고 개구리 고기, 우리나라의 갯가재에 속하는 베베가 들어간 반깐까지
반깐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다낭은 반깐이 그렇게 발달한 도시는 아닌듯하다.
뜨겁게 먹는 음식이니 북쪽 음식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래서인지 다낭 사람들이 즐겨먹는 반깐 까록 을 파는 곳은 많은데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이나 어묵이 잔뜩 들어간 반깐맛집은 별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물만 봐도 그 집의 위생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인데
내가 가장 단순하게 맛있다고 엄지를 척 드는 집은
로컬 시장인 박미안 시장에 있는 작은 반깐집이다.
이 집은 단순하게 반깐 짜까 를 판다.
국수만 선택할 수 있고
주인아주머니의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고수 안 넣는다고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고개만 저어주면 알아서 고수는 빼준다.
다만 국수 종류가 두 가지라서 반드시 국수는 미리 선택해야 한다.
반깐을 담아줄 때엔
삶아놓은 국수를 그릇에 담고
쫀득하게 맛있는 이 집만의 베트남 어묵을 쫑쫑쫑 썰어 넣은 뒤에
국물을 촥 부어준다.
그리고 고수나 쪽파를 넣어주는데 고수를 안 넣다고 하면 보통은 쪽파도 안 넣어준다
그리고 이 한 그릇의 가격이 20,000동
더운 여름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기 때문에 반드시 포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오후가 되면 이 집의 반깐은 이미 품절이다.
배달도 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번거롭더라도 꼭 직접 가서 포장을 해와야 한다.
집에서 맛보는 쫀득한 반깐 짜까 한 그릇도 매력적이지만
우기에 방문해서 그 좁은 자리에 앉아 먹는 반깐 짜까 한 그릇은
온몸을 후끈하게 해주고
국물까지 원샷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다.
으실으실 감기가 올 때
고춧가루 착착 뿌려서 한 그릇 먹고 나면
오려던 아픔이 사라지는 듯한 그런 개운한 맛이다.
외국인이 제법 드나드는 박미안 시장이지만
현지인들과 자리에 앉아 반깐 한 그릇 먹는 사람은 드문지
자리에 앉아 반깐을 먹기 시작하면
주변 상인들조차 한국 사람이야? 잘 먹어? 이러면서 온통 관심은 나에게 향한다.
혹시나 내가 뭘 못 먹을까 힐끔힐끔 친절하게 나를 살피는 아주머니도 귀엽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몸은 으실거리고
마음이 조금 허할 땐
나는 반깐 한 그릇이다.
- 이 글은 블로그 사브리나의 이야기 살롱에 먼저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