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서평

도시소설가와 농부과학자의 만남

by 김나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바꿔놨다.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를 피하게 됐고 밥도 집에서만 해결하고 자유롭던 외출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연말이 다 되었지만, 상황이 좋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으니 마스크는 한층 더 갑갑해지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디를 가도 빽빽한 건물과 사람 틈 사이에서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코로나 범유행 속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책은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속 아름다움과 생명들을 보여준다. 책의 배경지인 곡성군은 영화 곡성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지역인데, 골짜기와 높은 산의 고개와 자욱한 안개는 영화처럼 섬뜩하지 않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jpg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의 저자 김탁환 작가는 1996년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를 출간한 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소설을 썼다. 장편소설만 스물아홉 편을 썼는데도 아직 쓸 새 작품들이 책상에 쌓여있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긴 싫다는 생각이 든 그는 콘크리트 작업실을 벗어나 여러 마을에서 강연하고 독자들과 걷고, 종이 아닌 횡으로 돌아다닌 덕분에 서울과 지방으로만 나눈 이분법에서 벗어나 면적과 인구가 제각각인 농촌과 도시의 다양한 삶들이 보게 되었다. 그 많은 곳 중 가장 많이 간 마을은 전라남도 곡성군으로 현재 인구는 2만 8천 명대인데, 면적이 비슷한 서울보다 343배 적다.


김탁환 작가가 곡성군에서 주목한 곳은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이다. 미실란은 2005년 11월 29일 설립되어 2006년 봄에 폐교에 들어선 발아현미 연구 및 곡물 가공 전문업체이다. 김탁환 작가는 농부과학자이자 미실란을 설립한 이동현 대표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온 삶의 길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하던 시절을 지나 잠시 숨을 고르며 돌보지 못한 몸과 마음의 흉터를 살피는 시기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화를 통해 김탁환 작가는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이동현 대표 이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발아이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 발아를, 신을 대신하여 잠든 씨앗을 깨워, 씨앗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잠든 씨앗은 미래를 대비하여 움츠린 채 영양소를 아끼고 지키지만, 깨어나 싹을 틔울 때는 영양소를 활발하게 생동시킨다. 아직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씨앗이 지닌 영양소들로 싹이 자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저온에서 현미를 발아시키는 특허기술을 기반으로 15년째 미실란을 이끌고 있다.


이동현 대표의 어법은 특이한데 나무를 숲 사람, 벼를 논 사람이라고 불렀다. 어린 모에게 끊임없이 대화하고 조언을 해주고, 물속 생물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하고,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모들을 그저 이용하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갈 친구로 느끼게 만든다.


책의 목차는 1장 발아 “한껏 솟아오르고 또 한껏 뻗어내려”, 2장 모내기 “세상의 모든 마음을 주고받다”, 3장 김매기 “지키고 싶다면, 반복해야 한다”, 4장 추수 “여기까지 왔고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5장 파종 “사람이 씨앗이다”와 작은 소제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농부와 벼는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평생의 동반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폐기물을 먹은 물고기를 잡아 올려 먹어 미나미타병에 걸린 일본의 어부들처럼 벼 때문에 아파진 농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확량을 늘리려고 남용한 농약으로 인해 논이 병들면, 그 논에서 자라는 벼가 병들고, 그 벼를 키우는 농부가 병든다. 이후 벼에서 얻은 쌀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도 전부 병들어간다. 이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논과 벼에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져야 한다. 즉 논에서 자라는 벼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져야 한다. 이동현 농부가 278종의 모를 품종별로 일일이 심은 것은 유명세나 상표에 기대지 않고 가장 좋은 벼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말 땅의 건강과 논 사람의 건강, 사람의 건강 모두를 챙기는 전문가다.


미실란 벼.jpg


현재 지방의 농촌은 소멸 위기에 놓여있다.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고 풍년이 들면 쌀값이 폭락하는 역설 때문에 벼농사 면적도 해마다 줄고 있다. 면적당 인구밀도도 줄어들어 삶의 공동체들도 사라져갔다. 김탁환 작가는 소멸은 따로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엮여 있다고 말한다. 2040년에는 고흥군 인구가 0명이 될 것이라는 통계를 이동현 대표는 언급한다. 고흥은 소멸 위험진입 단계에 속했고 곡성은 그보다 더 심각한 소멸 고위험지역이라고 한다. 농촌 폐교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미실란이야말로 폐교에 안착한 회사이다.


미실란 들녘.jpg


“겨울에도 속흙이 움직이는 것 아세요? 흙 속 미생물들이 가만히 있질 않거든요.”


소멸을 마주하는 이동현 대표의 태도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는 낙담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이하지만, 겨울부터 준비하면 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겨울을 아무런 미동도 안 하는 듯 보내는 땅속도 미생물 덕분에 활발하듯이 소멸 속에서 견디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미실란 의자.jpg


도시소설가가 농부과학자와 만나면서 두 번째 인생 발아의 시간을 발견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도 새로운 성장을 하고 싶고 곡성 속 소멸하지만 봄을 준비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궁금하다면 하루빨리 책을 펼쳐보길 추천한다.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곡성에 방문해 미실란 밥cafe 반하다에서 미실라 유기농 오색 발아 현미로 만들어진 자연치유 밥상도 맛보고 들녘도 여유롭게 걸으며 발아의 시간을 갖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