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호수

헤르난 바스의 「The Monster Hunter」를 보고

by 김나윤


07_Hernan_Bas_The_Monster_Hunter(or,_Desperately_Seeking_Nessie)_Acrylic,_In.jpg?type=w800 Hernan Bas, The Monster Hunter (or, desperately seeking Nessie), 2020


흰 달빛이 잔잔한 물결을 비추고 있다. 저 멀리 산맥은 새까매져 윤곽만 간신히 보인다. 지금이라면 괴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품고 망원경을 들어 호수를 둘러봤다. 한 시간이 넘도록 주시했지만, 아직 물가에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허탕은 아니겠지. 괴물을 쫓은 지 십 삼 년째, 그것과 마주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머리라도 봤다면 좋을 텐데. 과거에도 호수에 사는 괴물을 봤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1934년에 촬영했다는 괴물의 머리는 모형이었던 걸로 들통났었지. 진짜 머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플레시오사우루스나 거대뱀장어를 닮았을까? 아니면 이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독특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계속 렌즈에 눈을 들이대고 있으니 어지럽다. 눈을 떼고 딱딱한 소파에 구부정히 몸을 기댔다.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늦가을의 서늘한 냉기에 온몸이 쿡쿡 쑤신다. 낡은 나무 어선이라 자칫하면 불이 날까 봐 난로 따위는 두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러워진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와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호화스럽지 않지만 나름 괜찮은 고저택도 나와 어선 신세라니. 이게 다 괴물 하나를 위해 저버린 것들이다. 괴물을 좇는 이유는 딱히 없다. 존재 자체가 이유랄까. 그렇다고 평범히 살던 때가 행복했다거나 그립다거나 하진 않다. 남들이 안다면 비웃음에서 그치지 않고 술자리에서 계속 미친놈으로 회자할 게 뻔하다. 쓴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열어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휴대폰에 마지막 전화가 울린 것은 십 년이 넘었다. 그것은 유일하게 내가 괴물을 좇는다는 걸 알던 연인에게서 온 이별 통보였다. 울먹이면서도 화가 섞인 그 애의 목소리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끝났었는데. 문득 떠올라 전화를 걸어볼까 봐 버튼을 만지작거리다 휴대폰을 구석으로 던졌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미련 가져봤자 뭘 하겠나. 정신 좀 차리려고 창가에 놓인 괴물의 피규어를 따라 손가락을 구부려본다. 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이 보인다. 괴물 하나만을 위해 읽고 공부해온 자료들이다. 퇴적암으로 가득 쌓인 호수 밑바닥에서 검은 아가리를 벌린 채 사냥감을 노리고 있을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사냥하고 발견되지 않은 거대한 동굴에서 숨죽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도 자연스레 상상된다. 중세시대 때도 목격담이 있는 만큼 단순 돈벌이를 위해 만든 전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순간 다리에서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물이 강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괴물이 나타난 게 분명하다. 수중카메라를 들고 선상으로 뛰어갔다. 육중한 목을 길게 뺀 모습이 보인다. 대략 5m는 넘어 보인다.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초점을 맞추고 버튼을 눌러댔다. 달빛에 코끼리처럼 주름진 회색 피부를 가진 모습이 보인다. 괴물의 길고 두꺼운 꼬리가 튀어나와 채찍처럼 호수를 내리쳤다. 물벼락이 튀어 금세 바지가 축축해졌다. 다리가 오들오들 떨린다. 그때 괴물이 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불빛 때문에 관심이 끌린 건가? 잘못하다간 위험해지겠어. 조타실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타륜을 붙잡았다. 뭍을 향해 배를 전속력으로 몰았다. 호수가 거대한 탓에 오래 걸린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암초가 튀어나왔다. 부딪힐 찰나 가까스로 방향을 꺾었다. 이제 직진하려는데 천장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설마…….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나로서는 카메라를 주머니에 꽉 집어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공룡 같은 꼬리가 선체를 둘둘 휘감더니 들어 올렸다. 중심을 잃은 나는 뒤로 나자빠졌다. 이윽고 꼬리에 의해 배는 두 동강 나서 호수로 떨어져 버렸다. 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콧구멍으로 들어온다. 팔을 허우적거려 가까스로 위로 올라갔다. 헉헉대며 숨을 내쉬고 있는데 괴물이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몸의 본능이 잡아먹힌다고 외치고 있다. 있는 힘껏 헤엄쳐 도망갔지만 금세 붙잡혔다. 괴물이 꼬리로 내 몸통을 휘감아 들어 올렸다. 이대로 뜯어먹히는 건가. 공격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겨우 팔을 패서 꼬집어보고, 입으로도 깨물었다. 단단한 껍질이었지만 턱에 힘을 콱 주자 송곳니가 박혔다. 끼에에엑하고 괴물이 울부짖었다. 고주파 음을 내서 귀에 피가 날 지경이다. 괴물은 몸부림만 칠 뿐 나를 놓아주질 않았다. 괴물은 자신의 꼬리를 주둥이로 가져가려고 했다. 나는 손을 다시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수중카메라가 그대로 있었다. 그것을 움켜쥐고 괴물의 머리를 노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 덕분에 작은 머리가 잘 보였다. 그대로 수중카메라를 괴물의 머리를 향해 세게 던졌다. 피할 겨를 없이 얻어맞은 그것은 뒤로 고꾸라지며 호수 깊숙이 가라앉았다. 억셌던 꼬리도 힘이 빠지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나도 빠졌지만, 더 깊숙이 헤엄쳐 흐린 눈으로 수중카메라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가라앉은 호수의 괴물을 찍었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괴물의 모습은 하나의 난파선 같은 인상을 줬다. 숨이 막힐 것 같아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코에 조금 물이 들어갔는지 머릿속까지 통증이 찌릿찌릿하다. 뻣뻣해지는 다리로 겨우 헤엄쳐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 무릎이 쓸려 따끔거렸다. 물가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마을의 초입이 보일 때 뒤를 돌아봤다. 괴물은 언제 쓰러졌냐는 듯 다시 꼿꼿이 일어나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깊숙한 물속으로 가버렸다. 나도 이제 내 갈 길을 가야지. 굳어가는 손으로 수중카메라를 움켜쥐어봤다. 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이제는 춥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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