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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윤 Jan 11. 2022

나를 위해 남을 파멸시켜도 될까

카이지 : 한정 가위 바위 보편

    최근, 왓챠에서 현시대를 이미 앞서 본 작품 카이지를 봤다. 살기 각박해진 사회 속 청년의 발버둥이 시즌 1, 2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려진 탓에 조금씩 보느라 오래 걸렸다. 그래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진행과 도박을 통해 삶의 철학을 전하는 걸 보니 왜 명작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흘러 대충 살아왔던 카이지는 스물한 살 청년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도시로 상경해 홀로 상경했지만 카이지는 일자리는 제대로 구해지지 않고  돈도 부족하자 좁은 집구석에서 빈둥거리는 니트족 생활을 했다. 그나마 청소를 깔끔히 하는 것 이외에는 카이지의 삶엔 전혀 생산성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에 부러움이 느껴지면서도 저대로 현실에 안주해서 살다 간 위험할 것 같았다.


    카이지는 맛있는 밥을 먹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비싼 자동차를 사는 등의 사치를 희망사항으로만 갖고 있을 뿐 일을 해보려고 하진 않았다. 그런 카이지의 오락거리는 기껏 해봐야 골목에 불법 주차된 자동차를 잔뜩 흠집 내주고 타이어를 터뜨리거나 고급 외제차의 앰블러를 부러뜨려 모으는 짓이었다. 어느 겨울날 카이지는 불법 주차된 자동차 한 대를 골려줬다가 사채업자 엔도에게 걸렸다. 엔도는 자동차에 대한 책임을 묻진 않았지만, 카이지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카이지는 그동안 대충 살아왔던 삶의 대가를 마주했다. 몇 년 전 못난 후배 타케시에게 보증을 서줬던 것이 비수로 돌아왔다. 


    사채업자 엔도는 후배가 잠적했기 때문에 빚은 카이지가 갚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원금에 이자까지 하면 카이지로서는 반평생을 갚아도 모자랐다. 저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저당 잡힌 인생을 받아들일 리가 순수히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엔도는 카이지에게 미끼를 던졌다. ‘희망’을 뜻하는 에스포와르호에서의 도박이었다. 딱히 방도가 없었던 카이지는 그렇게 희망의 에스포와르호에 올라탔다. 그곳에서는 카이지와 같은 무류인 낭떠러지까지 몰린 사람들이 잔뜩 타있었다. 물론 사건의 원흉인 후배도 포함이다.


    

    도박 주최 측인 테이아이 그룹에선 어릴 적부터 해온 추억의 가위바위보 게임이 이젠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 한정 가위바위보로 돌아왔다. 가위, 바위, 보 카드가 각 4장씩 총 12장의 카드와 목숨 역할을 해주는 별 세 개를 갖고 다른 사람들과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승자는 별 하나를 가져오고, 진 사람은 별을 빼앗긴다. 그렇게 별을 다 잃은 사람은 별실행이다. 제한시간 4시간 안에 별 3개 이상을 갖고 있고 카드를 전부 소진한다면 무사히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 끝난 뒤 별 매매 시간에도 구제받지 못하면 온갖 약물실험을 당해 1년 안에 폐인이 된다. 


    갈 때까지 갔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는 충격과 함께 게임은 시작했다.  보증 한 번 잘못 섰던 것으로 큰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카이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협력해서 게임을 빨리 클리어하자는 낯선 이를 믿고 뒤통수를 맞았다. 그제야 카이지는 자신이 끓고 있는 지옥 가마솥 바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칫하다간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단 걸 깨달은 카이지는 후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남자와 뭉쳤다.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나오는 카드수에서 힌트를 얻어 한정 가위바위보를 이기는 방법을 찾았다. 참가자들로부터 주먹 카드를 사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중에 남은 가위 카드들을 모두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또 다른 무리들이 보자기 카드를 모아대면서 이는 수포가 되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던 카이지는 맨 처음 자신의 별을 2개나 가져갔던 후나이의 속임수를 폭로하여 한 방을 먹이고 그에게서 별 9개를 가져와 동료라 생각했던 후배와 안도에게 줬다. 이후 자기 혼자 남은 카드를 떠안고 패자가 되어 별실행으로 갔다. 이때까지 카이지는 타케시와 안도가  게임 종료 후 별 매매 시간에 자신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가. 타케시와 안도는 카이지를 구할 바에 별을 팔아 모은 돈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별실의 벽을 통해 카이지는 그 모습들을 다 보고 있었다. 십 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폐인이 될 게 뻔했다. 그렇게 카이지는 자신에게 풀어줘야만 하는 담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별실에서 카드를 알려주는 대신에 구제를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와 격투를 벌였다. 덕분에 아저씨가 담보로 몰래 들여온 보석을 입에 숨길 수 있었다. 뒤늦게 보석을 도둑질당했다는 걸 안 아저씨 무리는 결국 카이지를 구제해줬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카이지는 바로 안도와 타케시를 후려 패고 돈과 별들을 빼앗았다. 이대로 주머니에 넣으면 사회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카이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별실에 갇혀있던 당시 자신과 비슷하게 뒤통수를 당하고 갇혀있던 아저씨 이시다를 구한 것이었다. 계속 배신만 당해왔던 세상에서 자신이 한 약속은 무조건 지키는 카이지를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과 저렇게 올바르게 사는 사람을 호구로 바라보는 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배 에스포와르호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려는 카이지에게  최악의 소식이 들려왔다. 기존의 빚 385만 엔은 탕감했으나 게임 군자금으로 빌렸던 돈x10분 당 1.5%라는 정신 나간 폭리로 630만 엔이란 빚을 지게 되었다. 안 갚으면 어떡할 거냐는 말에 테이아이는 어떻게든 갚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파멸에 빠질뻔한 사람은 구했지만 빚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카이지는 무거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 에피소드는 나 자신도 나태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했다. 지금의 삶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걸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정 가위바위보 게임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파멸로 떨어뜨릴 수 있냐는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가혹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지만, 선택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양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인터넷에서 흔히 본 "함부로 보증 서주지 마라."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이제는 보증과 빚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잔인하게 만들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카이지가 불어난 빚을 갚기 위해 또 어떤 게임에 참여하는지 이야기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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