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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지는 나
저녁 빛이 사라질 때, 우리는 스스로를 잠시 내려놓는다. 그 순간은 어두워 보이지만 오히려 내면이 가장 또렷해지는 때이다. 끝없이 많아 보이는 선택지 속에서 결국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주체성은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삶에 허무란 없다.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집착이 사라져야 비로소 세계가 열린다. 주체성이 없는 이 생을 인정하는 것은 나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존중하는 것이다. 생겨난 빈자리 안에서 새로운 감각은 솟아오른다.
그렇게 얻은 의지는 이전과 다르다. 내가 선택하겠다는 욕망에서 오는 추진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탐구의 힘이다. 비워야 채워지고, 멈춰야 보이며, 내려놓아야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주체는 더 이상 붙잡지 않으려는 순간에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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