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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인간은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온갖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 서사 속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려 한다. 그러나 이 저항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절망적인 방식이다. 현실에서 도피할수록 무력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분명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끝내 피하려 했던 감각을 마주치는 순간은 항상 동일하다. 그때 인간은 비로소 깨닫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론을 싫어한다. 구조를 따분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구조를 본다는 것은 문제가 외부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감각을 소비한다. 분노, 희망, 위안 같은 즉각적인 감정으로 현실을 덮으려 한다. 그러나 구조를 보지 않는 한, 현상은 반복된다. 같은 실패, 같은 좌절, 같은 관계의 붕괴가 다른 얼굴로 재현될 뿐이다. 이것은 운명이 아니라 그저 이해되지 않은 메커니즘의 결과다.
여기서 전환이 필요하다. 무력감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무기력함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왜 그 감각이 발생했는지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이론은 반복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통로다. 구조를 아는 사람만이 구조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무력함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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