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2023년 3박4일 대만여행
"찰나의 순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저마다 간직하는 찰나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일상도, 생각도, 느낌도 기록을 잘 하지 않는 나이기에 평생을 살아가는 기억이 되려면, 그 찰나는 어마어마한 인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안락함과 익숙함을 좋아하는 내가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주기적으로 달아나고 싶은 책임과 의무 속의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여행의 이유와 깨달음을 기록하지 않는 나이기에 잘은 모르겠다..!)
2023년 1월 남자친구와 3박 4일 첫 해외여행을 대만으로 떠났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더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다는 이유 이외에 나에게 표면적인 여행의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의 이유-현실로부터 달아나기-가 아닌 것만으로, 현실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들었다. (소소하게나마, 여행에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올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대만여행 3일째였다.
한국에 따릉이가 있다면, 대만에 유라이크가 있다. 2년을 사귀는 동안 남자친구와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는데, 왜인지 대만에서는 타보고 싶었다. 빌려보려 고군분투했지만, USIM 인증에 실패한 이방인에게 자전거 빌리기란 쉽지 않았다. 근처 역 지하 친절하신 역무원 분과 1시간 (구글 번역기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6만원 보증금을 걸어놓고 1일권을 결제해보자고 했다. 자전거에 대한 기대보다, 16만원을 돌려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더 컸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반드시 환급받아주겠다고 했고, 나는 믿고 카드를 등록했다.
그렇게 자전거와 함께 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결제는 했지만 막상 자전거를 빌리려고 하니, 너무 좋은 날씨에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계속 빈 정거장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여유로운 걸음에 여기저기에서 사진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이 사진은 한국에 돌아와 남자친구의 첫번째 프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빌려 무작정 지도에서 보이는 강변으로 갔다. 강변 위 다리는 우리나라의 한강 풍경과 비슷했고, 내 머리에는 평생 잊지 못할 하나의 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강변을 따라 한참 말 없이 자전거를 타며 바라본 풍경과 잠깐 벤치에 앉아 먹은 꿀물의 시원함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강변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다가 온 저녁 시간 무작정 시내로 나가보았다. 우리나라의 경동시장과 같은 오래된 시장이 나왔고, 현지인이 줄을 선 곳에 무작정 줄을 서보았다. 기다림 끝에 거의 10년 전 배운 중국어를 떠올려 'Liang ge(두 개 주세요)' 라는 말을 건넨 나에게, 사장님은 이방인에 대한 환대 가득한 눈과 함께 빵 두개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야시장을 걸으며 현지의 밤을 느꼈다. 빨리 숙소에 돌아가고 싶어 지하철 생각이 났지만, 여행 마지막 밤을 눈에 더 담고 싶다는 아쉬움과 숙소까지 돌아가기에 숙소까지 30분 가량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한 순간에는 몰랐다. 귀가길 자전거 30분이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기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반팔로 자전거를 타는 팔을 가르는 시원한 바람과 뒤따르가며 보는 남자친구의 뒷모습, 그리고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느라 10초에 한 번씩 뒤를 돌아봐주는 남자친구의 옆모습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신기하다. 가까운 곳에 자전거가 없어 한참을 걸어 가느라 거리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 단 한장의 프로필 사진이 되고, 귀가길 교통이 애매해 타게 된 자전거가 영원히 잊지 못할 찰나의 기억을 만들어준다니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대만 강변 위 다리에서 본 드높은 하늘과 자전거 위 나를 가르는 시원한 바람, 뒤따라가며 보는 백팩 맨 남자친구의 뒷모습과 내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느라 뒤를 봐주는 남자친구의 옆모습이 평생을 살아가는 찰나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은지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지치고 힘들 때 꺼낼 수 있는 기억이 되어줄 것 같다.
결론.. 인생 뭐 별 거 있나 가끔 여행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면 행복한 인생이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