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건이가 3살이 되고 나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딱 일주일 만에 그 일은 일어났다.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딱 세 시간만 수업하는 곳이다. 영어 노출과 사회성을 고려하여 고른 학교였다. 학교만 갔다 오면 영어 방언이 터지는 것이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뭐라고? 잠깐만. 두렵다고? 맞다. 부정할 수 없는 이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다. 아이의 영어는 무섭게 늘어갔다. 완벽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영어로 혼자 종알대는 건이를 지켜보며 혼자 안절부절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엄마 이건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해? 아이의 호기심이 나를 긴장시켰다. 지금까지는 나와 집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한국말을 썼지만 학교에 가면서 완전히 다른 환경이 아이 앞에 펼쳐진 것이다. 어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긴 이야기는 각설하고, 나는 건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건이가 앞집 친구랑 놀다 와서는 나한테 마미라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하기까지 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이는 말이 빨랐고 제법 조리 있게 말할 줄 알았으며 어떨 때는 정말이지 너무 어른처럼 말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내 주변 사람들과 한국의 가족들은 모두 건이의 한국말 실력을 칭찬했고 나는 그 사실이 뿌듯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말을 잘하는 것이 너무나 귀엽고 기특했다. 꼭 그것이 내 아이라는 징표 같았다. 너무나 귀여운 내 아기, 엄마, 엄마 나를 부르는 그 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한국어는 나와 아이를 이어주는 비밀스러운 사랑의 언어였다.
나는 이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이다. 나는 그 사실이 아무렇지 않다. 내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끼는 이유도 영어가 자연스럽지 않아서일 것이다. 영어를 '잘' 했다면, 적어도 내 생각을 막힘없이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면 글쎄, 어느 정도 이곳에 속해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말을 할 때 나는 수다쟁이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인데 영어로 말할 땐 무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만 같다. 답변할 말이 생각이 안 나서 그냥 그 사람 말에 동의해 버린 적도 있고 싫은데도 좋다고 그저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원래의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 왠지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 시선. 그러나 나는 괜찮았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 세계에서 나를 이방인으로 취급해도,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아도 그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이곳에 굳이 속하지 않는 것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 나는 다시금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다. 모두가 한국말을 하는 그 사회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한 명의 아줌마로.
건이는 다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자랐으니 영어가 자연스럽고 편하게 될 터였다. 그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아이를 이 사회에서 추방하려고 할 것이다. 또래와 다르게 보이는 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인지를. 또래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실감을 주는지, 패배감을 주는지, 열패감을 주는지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사춘기시절 그 은근한 따돌림 혹은 소외감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심지어 나는 그들과 다른 언어를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아주 대단히 큰 차이점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책가방의 무늬, 구두 앞 코의 모양, 안경의 형태, 말할 때의 버릇,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놀랍지 않은가? 그들은 아주 집요하게 작은 무엇이라도 다른 점을 찾아내어 끝내는 그 세계에서 나를 쫓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언어를 쓴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나를 격리시켜 버릴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내 아이의 가장 큰 약점이 될 한국어를 나는 버리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오히려 영어를 하는 것에 기뻐해야 할까. 철저히 누구보다 더 이곳에 속하려고 해야 할까. 감히 그때도 한국어를 써야지, 하고 말할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지금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모두가 끊임없이 비슷해지려 하고 그러나 모두가 개성을 갖고 싶어 하는 이 모순된 세상 속에서 나도 아이에게 그들과 같아지라 해야 할지 달라지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확히 뭘까.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결국에는 내 품을 떠난다는 것? 내가 모르는 세계로 아이가 나아가는 것?
내가 아이와 깊은 소통을 할 수 없을까봐,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가 알지 못할까봐, 나의 진심을 아이가 모를까봐,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내가 부모로서 아이를 잘 이끌어 줄 수 없을까봐, 그것이 언어 때문일까봐 두렵다.
건이가 영어를 한다는 것은, 한국어를 더 이상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이 모든 두려움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언어를 쓰든 아이가 내 품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아이가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은 기뻐하고 대견해할 일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의 이 두려움은 단지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가능한 내가 아는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붙들어 두려고 했음을.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의 본질은 언어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내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순간이 와도 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해와 I love you는 정확히 똑같은 말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고의 회사 사람들과 함께 근교 온천으로 놀러갔을때의 일이다. 모두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는데 나는 그중 어떤 동료의 아내분과 친분이 있었다. 나는 그분을 언니라 부르며 따랐는데 언니의 큰 아들은 대학교 3학년, 둘째 딸은 이제 대학교 입학을 앞둔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종종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언니는 이민 온 지 오래되었지만 역시 한국말이 더 편한 한국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역시나 내가 생각하는 진짜 한국 사람은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 둘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근 채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 아이들 한국말 교육 어떻게 시키셨어요?"
"우리 아들은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안되더라고. 그래서 나는 영어로도 하고 한국말로도 하고 그러는데 아들은 영어로만 말해."
"딸은요?"
"글쎄, 딸들은 보통 아들들보다는 더 잘하는 것 같아. 그래도 뭐 내 마음처럼은 안 됐지. 나도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어떤 한인 가족을 만났었는데 그 집 애들이 한국말을 전혀 못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속으로 왜 저렇게 한국말을 안 가르쳤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돼 보니까 우리 애들도 한국말을 못 하네"
언니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두려워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만 같았다. 내 옆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 두 살배기 건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내 몸 쪽으로 당겼다. 나는 다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그럼 소통하는데 어렵거나 내가 이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세요?"
나는 조금은 절망적이었다. 그러자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말했다.
"글쎄, 꼭 같은 언어를 해야지만 소통이 되는 걸까? 나는 우리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랑 내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둘 다 한국말을 하지만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서 말이야."
작년 8월에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3개월가량 한국에 나가있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학교에 다닌 건 겨우 5개월 정도 된 셈이다. 건이는 이제 제법 영어를 잘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쓰고 싶어 한다. 방금도 영어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영어로 한 문장 읽고 나름 한국어로도 번역해 읽어준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건이는 영어가 좋아?"하고 물으니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있잖아, " 하다가 나는 말을 멈추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야. 넌 그럴 필요 없어. 이걸 받아들이는 건 나의 몫이거든. 네가 애쓸 필요 없어. 내가 좀 더 현명한 엄마이고 싶어. 조금은 미안해. 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 것을 눈치챈 것일까 건이는 왠지 이렇게 말했다.
"어, 엄마한테 나 학교에서 영어 배워서 많이 늘은 거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래, 정말 많이 늘었어. 엄마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눈물이 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