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는 말 -7
"그러고 보니 우리는 꽤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함께 다녔네요? 그런데 왜 나는 매번 나만 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창윤 씨와 함께 집에 오고 가끔씩은 학교에도 같이 가고 했었는데. 왜 나만... 항상 나만 억울하고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때 우리의 중심은 항상 나였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매번 텅 비어있는 집이 죽도록 싫었다. 그리고 혼자 끓여 먹던 라면은 세상에서 나를 제일 비참하게 만들었다. 왜 나만, 매번 나만 외로움과 불행 속에 남겨져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남겨진 적막이 무섭고 두려웠다.
"알아요? 그때 서은 씨 별명 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울보 찡. 그것도 정말 싫었어요. 나는 정말 울지 않았는데 언니들이나 친구들은 항상 그걸로 놀렸어요. 한 명이 시작하면 전염되듯이 나에게 울보 찡이라고 툭툭 내뱉더라고요."
"알아요. 울지 않았다는 거. 그냥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 눈.. 아마 친구들은 그걸 보고 그랬나 봐요. 그런데 난 그게 귀여웠는데."
그 사람은 마치 그때를 회상이라도 하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빨리 숨어라. 시간 잰다."
아이들은 제각기 숨을 곳을 찾아 흩어졌다. 나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서 206호 앞에 있는 큰 화분 뒤에 숨기 위해 뛰어갔다.
"나 있어. 다른 데 가서 숨어."
주희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재활용품이 들어있는 큰 포대 뒤에 가서 숨었다.
"찾는다!"
연립주택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그리고 곧이어 숨은 곳이 발각된 친구들의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더 웅크리고 앉았다. 계단에서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내 앞에서 뚝 멈추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창윤이었다.
창윤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창윤은 그대로 뒤를 돌아 뛰어갔다.
이번 술래는 혜연언니가 되었다.
"빨리 숨어라. 시간 잰다. "
나는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는 큰 포대 뒤에도 아닌, 206호 화분 뒤도 아닌 다른 곳에 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고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10.. 9.. 8.. ... 7654321. 찾는다!"
아직 채 숨기도 전에 혜연언니가 내 어깨를 움켜 잡았다.
"찾았다!"
"언니야, 이건 반칙이야. 숫자를 그렇게 세는 게 어딨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며 갈라졌다.
"울보 찡. 이제 서은이가 술래다."
혜연언니의 말에 숨어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서 내 주위로 다가왔다. 친구들은 웃으며 내 얼굴을 살폈다.
"울보 찡. 서은이가 이제 시작해."
"울보 찡."
"울보 찡."
"울보 찡."
그 말은 전염되기라도 한 듯 아이들 입에서 하나 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았는데, 정말 나는 울지 않았는데.
그런데 단 한 사람, 창윤만은 나를 보며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빗방울은 카페 '슴'의 큰 창을 두드리며 흘러내렸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슴'의 배경 속 팝송의 박자를 맞추는 듯 경쾌한 소리를 냈다. 쏟아지듯 밝히는 하얀 조명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도, 그의 목소리도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함께라는 것, 누구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 어린 시절과는 달리 지금의 나와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함께라는 그 말이 다시금 빗방울처럼 내 가슴속을 두드리며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