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명절도 공휴일도 그렇다고 내 생일도 아닌데 대뜸 큰 가방을 하나 짊어지고 늦은 밤 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말끔하고 귀공자 같던 형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무척 피로하고 지쳐 보였다. 무슨 일인지 너덜너덜해진 바지 밑단에는 흙도 잔뜩 묻어있었다.
"방에 먼저 들어갈게요."
형이 엄마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형은 자기 앞에 물끄러미 서있는 나를 보고도 여느 때처럼 안아주지도,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허기진 배를 달래줄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것뿐이었다. 새 밥을 지어주기 위해 급하게 밥을 지으면서도 엄마는 손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형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거야?"
그러자 형은 "아니에요."라는 짧은 대답만 할 뿐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형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형이 먹을 음식을 빠르게 준비했는데 빨간 고춧가루로 매콤한 맛을 낸 고등어조림을 어느새 뚝딱해서 형의 상 앞에 내어놓았다. 시원한 무와 함께 매콤하게 졸여낸 고등어조림은 형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부드러운 무를 밥에 쓱쓱 비벼 먹는 것을 형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냥 자꾸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기분도 오락가락하는 거 같고..."
"난 또 뭐라고, 요즘 네가 취업준비 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은 가 보다. 원래 그런 거야. 취업하는 게 어디 쉽니? 집에 온 김에 엄마 밥 먹으면서 푹 쉬다가 올라가."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형은 젓가락을 쥐은 손가락도 힘에 부친 듯 보였지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조림으로 저절로 향하는 그 익숙함이 어딘지 모르게 한편에 남아 있던 엄마의 불안함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러자 엄마의 얼굴에 어른거렸던 어두운 그림자도 어느새 서서히 걷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맛있어요. 그런데 이건 무슨 반찬이에요?"
엄마가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너무 맛있어도 그렇지 형이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조림도 잊어버린 거야?"
금방 서울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형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바깥출입은커녕 자신의 방에서조차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잔뜩 그늘진 얼굴로 형의 방을 들여다보던 엄마의 얼굴에는 더욱 깊은 주름이 파였다. 그것은 자신이 천천히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움과는 다르게, 마치 사람을 병들어 보이게 하는 어둠을 아주 깊게 깔아놓았다.
어두운 방에서도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형은 늘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잤고 (사실 잠을 자는 건지 그냥 누워만 있는 건지는 잘 알지 못했다) 엄마가 밥을 먹으라는 재촉 어린 말이 있을 때만 초점 없는 눈으로 마치 좀비가 막 어둠을 등지고 빛을 향해 걸어 나오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식탁 의자에 덜썩하고 앉았다.
형은 매번 앉던 자신의 자리조차 잘 찾지 못하고 매번 내 자리나 엄마의 자리에 앉았고 내가 "여긴 내 자린데.."라고 말하면 "그래?"라고 대답하거나 가끔씩은 "왜? 내가 내 자리도 몰랐을까 봐 이러는 거야?"라고 하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며칠 사이 형은 내가 알던 형이 아닌, 형과 똑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형의 얼굴에서 예전과 같은 미소는 애당초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에게 보내주었던 그 많은 미소들은 한순간 증발해서 마치 한 번의 수분조차 받아본 적 없는 다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바싹 말라있었다. 형이 가졌던 수많은 표정들은 온통 우울하거나 화가 난 듯한 회색그림자로 가득 채워졌고 그것마저도 뒤죽박죽 섞여 곤죽이 되어 마치 지옥의 형벌에 갇힌 사람들의 얼굴이 한데 모여있는 것처럼 끔찍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형은 더 이상 나에게 꼬맹이, 막둥이, 똥구멍과 같은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