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
"아무래도 우리 인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무슨 일?"
"아무 일도 없는 데 갑자기 저러는 게 이상하잖아요. 대뜸 그 늦은 시간에 연락도 없이 집에 와서는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몇 날 며칠 갇혀 지내는 걸 보면은 아무래도 무슨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아 불안해 죽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속 편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거예요. 별에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라고요. 혹시 보이스피싱 같은 걸 당한 건 아닐까요. 누구에게 괴롭힘이나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거면 어쩌죠?"
엄마의 안달 난 불안감과는 달리 아빠의 마음에는 별다른 동요조차 없는 듯 보였다.
"당신은 어떻게 된 게 집안일에는 콧구멍만큼도 관심이 없는 거예요? 제발 아빠면 애한테 가서 이야기라도 먼저 건네고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냐 물어도 보고 잘못된 게 있으면 타일러도 보고 해야지. 어디 주워온 자식도 아니고 남의 자식이라도 이러진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 일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는 사람이 지 새끼일에는 뭐가 이러냐고요."
엄마의 한 서린 울음소리가 안방 밖으로 새어 나와 집 안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자 더는 못 참겠다 싶었는지 안방 문을 확 박차고 나온 아빠가 형의 방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젖혔다.
"인수, 너 이 새끼, 일어나 봐. 너는 뭐 하는 새낀데 하루 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잠만 처자고 있냐는 말이야. 서울에는 안 가고 이제 취업준비는 안 해?”
형은 아빠의 벼락같은 큰소리에도 쉽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북이보다도 느린 형태로 큰 눈만 끔뻑대는 형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 보였다.
아빠는 낯선 형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한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다 아빠의 얼굴은 점점 벌게지더니 급기야 귀까지 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빠는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형을 침대에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보라고, 이 새끼가 이제 아빠 말도 말 같지 않은 거야?"
형은 마지못해 일어나 앉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은 여전히 잔뜩 일그러진 채로, 아니 좀 더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잔뜩 일그러진 쪽은 형의 얼굴보다는 둥글게 말려버린 형의 등이었다.
"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형이 아닌 엄마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빠는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 형의 뺨을 향해 크게 손바닥을 휘둘렀고 그것을 본 엄마가 까무러치 듯 입에 거품을 물며 뛰어 들어왔다.
"네."
뽀얀 뺨이 금세 빨개져 터질 것 같았던 형은 얼굴을 감싸지도 않고 아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는 그 자리에 버티 듯 앉아있었다. 그런 형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아빠는 "허허."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형의 방을 나가 버렸다. 아빠가 방에서 나가자 망부석이 된 듯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나도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 집은 그저 어둠만이 내려앉은 듯 어둡고 깜깜했다. 밤하늘에 달이나 별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방이 그저 칠흑같이 깜깜한 그런 것 말이다.
엄마는 음식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마다 조그맣지만 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엄마의 답답하고 꽉 막힌 속의 공기를 내 보낼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엄마는 아빠가 없는 낮 시간에는 온종일 자신의 시선이 바로 닿을 수 있도록 형의 방문을 열어두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알지 못하는지 시간은 계속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형만은 처음 집으로 돌아왔던 그 시간으로 멈춰있었다.
엄마는 형과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형의 기분을 최대한 맞췄고 설득했고 그의 앞에서 울어도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마다 형은 우울해하거나 여전히 힘이 없거나 가끔씩은 엄마에게 심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오늘은 기필코 형을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새 볼이 홀쭉해지고 가늘어진 허리 때문에 고무줄바지가 헐렁해져 버린 형과 산책이라도 나가봐야겠다고 다짐했던 날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