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
"인수야, 하늘 한 번 봐라. 날씨가 정말 좋다. 엄마는 바깥바람 쐬러 가고 싶은데 우리 한 번만 같이 나갔다가 오면 안 될까?"
엄마는 형의 방 창문을 열며 조심스레 말했다. 절대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건넨 엄마의 제안에 형은고개를 끄덕이며 어쩐 일인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보는 형의 긍정적인 사인에 마음이 한껏 들떠 올랐다. 하지만 형의 마음이 혹시나 바뀌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지 "진짜 가는 거지? 진짜지?" 하며 물었고 그것도 한 번밖에 더는 묻지 못하고 내내 형의 기분을 살폈다.
형은 책상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던 옷들을 꺼내서 입기 시작했다. 형의 행동은 옷을 갈아입는 그 사소한 일에서조차 느리고 무척 굼떠있었다. 여전히 형의 등은 힘없이 둥글게 말려있었고 그의 눈은 매일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어쩐지 한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퀭해있었다.
답답한 형의 모습에도 엄마는 꽤나 만족한 듯 그동안 자신의 모든 신경이란 신경은 형에게로 향하던 눈길을 거두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외출준비를 했다. 봄이 되면 입을 거라고 사두고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하늘하늘한 파스텔 톤 원피스로 갈아입고 화장까지 하며 외출준비를 서두르는 것 같았다. 세면대에서 대충 물을 묻히고 수건으로 닦아낸 머리카락에 드라이로 살짝 볼륨을 넣고 오렌지색 립스틱을 바르며 위아래 입술을 쩝쩝거리며 마주 대기도 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만지고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스카프까지 목에 둘렀다. 그런 엄마의 볼은 마치 첫 데이트에 설렌 이십 대 아가씨처럼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가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작게나마 멋을 내고 스카프까지 두르고 있을 동안에도 형은 여전히 옷 입는 것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는데도 형은 겨우 입은 티셔츠에 달린 작은 단추 세 개를 채우지 못해 허둥댔다. 그새 굽은 것은 등만이 아닌 듯 뭉툭해진 손가락은 마치 나무토막을 끼워놓은 것처럼 뻣뻣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는 단추가 구멍사이를 지나지 못하고 계속 어긋나기만 했다. 엄마는 그런 형에게 다가가 다정한 손길로 형의 움푹 파인 볼과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의 부드럽지만 거칠어진 손은 천천히 형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서 나무토막 같은 형의 손가락들이 자꾸만 어긋나서 성공하지 못했던 단추 세 개 중에 두 개를 능숙하게 채워 넣었다.
형은 엄마의 도움으로 티셔츠와 청바지까지 입고 이제 얇은 점퍼 하나만 남았는데 그 사소한 행위가 뭐라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단지 그 점퍼의 소매 하나가 반대쪽으로 빠져나와 있을 뿐이었는데 이 불량한 옷을 입을 방도가 전혀 없다는 듯 형은 무척이나 난감해하고 있었다.
"형, 왜 그래?"
나는 형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도 형은 옷을 갈아입다 말고 곧잘 나를 보며 장난을 걸어왔었다. 특히 소매구멍을 내 머리에 씌우려는 장난은 형의 주특기였는데 씩씩거리는 나를 두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큰소리로 깔깔대며 배를 잡고 웃었고 급기야 바닥에 뒹굴거리며 눈물까지 흘려댔었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형을 보면서도 웃지 않았다.
초로기 치매.
그것은 형의 병명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