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5
처음 형의 병명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치매와는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초로기, 초록, 초로기..
파란 새싹이 막 돋아나서 이제 곧 온 세상을 초록초록하게 물들일 것 같았던 그 초로기라는 단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걸리는 줄 알았던 치매라는 무서운 병과 나란히 붙어있다니.. 어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병이 있거나 아니면 우리 형만 걸리는 특별한 병은 아닐까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서 초록색 이름이 붙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이름을 지은 박사님들은 국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었나 보다.
아무튼, 형과 산책을 가기 위해 들떠있었던 엄마는 그 안타까운 형의 모습에 그대로 안방으로 다시 들어갔고 봄이 가기 전에 입어보려 했던 하늘하늘한 파스텔톤 원피스를 당장 벗어던져버렸다. 그리고 평소 입던 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고는 유난히도 좋았던 그날의 날씨를 채 느껴보지도 못하고 형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엄마는 형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어른스러웠던 형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늘 엄마의 곁에서 무던히 그녀를 돕던 듬직하고 여린 아들이었기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해 겹겹이 쌓였던 마음속 어떤 것들이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해서 밖으로 터져 나왔을 거라고 엄마는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병명을 내린 의사의 말을 엄마는 믿지 못했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며 우리 집에는 치매를 앓았던 사람이 없노라고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을 거라고 의사에게 호소했다.
"이런 천하의 사기꾼 돌팔이 의사 같으니라고."
엄마가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형을 옆에 두고도 울지 않았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엄마의 마음은 확고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을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세요."
하지만 엄마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아빠는 밤 열 시가 다 되어가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엄마에게 형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도 아빠는 펑크 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대신해내고 있느라 어쩌면 형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수오가 오늘은 형 옆에 있어줄래?"
지친 엄마가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래야 했고 지금 엄마의 곁에서 형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빠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유난히 할 일이 더 많았는지 아빠의 옷차림은 몹시 흐트러져있었다.
"당신 제정신이에요? 지금 우리 인수에게 어떤 큰일이 일어났는데 뭐 하다가 지금에야 집으로 기어들어오냐고요."
아빠를 눈앞에 두고서야 엄마는 비로소 울음을 뱉어냈다. 우체국 마크가 달린 점퍼를 채 벗지도 못한 아빠의 어깨를 흔들며 엄마는 그동안 간신히 잡고 있던 감정의 끈을 놓고 말았다. 아빠의 두 팔은 무방비 상태로 힘없이 흔들렸다.
"그래서 어떻게 할 수 있다는데? 의사가 무슨 말이 있었을 거 아니야?"
아빠는 자신의 어깨를 흔드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엄마는 차가운 아빠의 반응에 잠시 멈칫하더니 토끼처럼 빨개진 눈을 다시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쓰러져서는 오른손은 바닥을 짚고 하나 남은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나는 엄마의 가슴이 엄마의 빨간 눈처럼 새빨갛게 변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온통 피로 물들어진 엄마의 가슴이 빨간 피를 쏟아내며 방 안 곳곳을 어지럽히는 상상을 했다.
"당신 집안에 치매 걸렸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엄마, 아버지 모두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무슨 병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어머니 젊었을 때 집 잃어버려서 객사하셨다고 그때 동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냐고요?"
"허허, 이 사람아. 내가 일가친척이 있나 뭐가 있나.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이 있어야 물어보지. 돌아가신 우리 부모 무덤에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아빠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남겨두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아빠는 평소보다 온몸 구석구석을 더 꼼꼼히 씻는 듯 오래도록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샤워기 속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소리만이 한참 동안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미리 형 침대 밑에 깔아 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오랜만의 외출에 힘이 들었는지 형은 이미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어있었다.
형이 잠이 든 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들었다면 형은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이 아팠을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