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9
매일 잊지 않고 약을 먹이고 나가지 않겠다고 화를 내는 형을 달래서 재활치료도 꾸준히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날이 갈수록 형의 상태는 나빠졌다.
그런 형을 돌보는 엄마도 나날이 수척해지고 얼굴에도 차츰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염색할 기력도 없는 엄마의 머리에는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그 새 십 년은 더 늙어버린 엄마지만 형 앞에서 만큼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바라보는 젊은 엄마와 같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똑같은 것을 백번을 넘게 반복하면서 형은 매번 짜증을 내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포기란 없어 보였다. 때론 인자하게, 때론 단호하게 엄마는 그렇게 고비를 하나씩 넘어갔다.
엄마는 안방 침대 옆 바닥에 앉아 형의 속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형의 속옷을 앞에 두고 엄마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엄마의 공허한 눈동자에 내가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내가 곁에 가서 부르자 그제야 엄마는 내가 온 줄 알고 다시 형의 속옷을 집어 들었다. 형의 속옷 옆에는 바늘, 실과 함께 형의 이름과 엄마의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천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형의 속옷에 정성스레 그 작은 천들을 덧대고 있었다.
"엄마, 요즘은 그런 거 필요 없어."
"알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형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그러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장성해 버린 아들의 손을 놓칠까 봐 엄마는 내내 불안해했다.
"오 년만 있으면 치매를 낫게 하는 약이 나온대."
"누가 그런 말을 하던데?"
"방송에서..."
"......"
"...... 오 년? 오 년이라고? 뭔 놈의 약이 만날 오 년이래. 어제도 오 년, 내일도 오 년, 십 년 전에도 오 년, 도대체 그 시간은 왜 매번 그대로인 건데."
엄마는 손에 있던 형의 속옷과 천 조각들을 꽉 쥐어 아무렇게나 흐트러뜨린 채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의 작은 어깨는 흔들렸고 그것은 한참 동안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엄마를 그곳에 남겨두고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형은 어두운 방 안 침대에 누워있었고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형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형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다시 아빠의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 어디쯤에서 바오밥나무를 찾고 있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간의 많은 일들은 우리 가족을 한 점 빛도 없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가두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시간도 멈춘 듯 끝도 없는 그곳에서 나올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온종일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온전한 희망 하나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가 오천 년이 된 바오밥나무를 찾고 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진짜 그것을 찾아서 마지막 희망 하나가 온전히 우리의 곁에 올 때까지 절대로 미리 꺼내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째깍째깍,
여전히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한데 어디선가 멈췄던 시계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끝>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