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8
"우리 엄마가 너희 아빠 경찰서에 있다는데 진짜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단짝인 민우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정말 아니야? 우리 엄마가 분명히 너희 아빠 경찰서에 있다고.. 아님 말고."
민우는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살폈다. 사실 민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빠가 경찰서에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 아빠는 긴 깃발을 배낭에 꽂고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다. 왜 아빠가 이런 순간에 혼자서 멀리 여행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하필 여행가이드들이나 들 만한 긴 깃발을 배낭에 꽂아야만 했는지 그것도 알 수 없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선두에서 앞만 보며 꿋꿋이 나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아빠의 꿈은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는 탐험가, 여행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제껏 해외는커녕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아빠가 그런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우리 집 거실 창에 붙여놓은 커다란 세계지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빠는 종종 세계지도를 보며 몇십 분씩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수오야, 여기가 어딘지 아니?"
아빠는 나를 자신의 두툼한 허벅지에 앉히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지도 속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들을 마치 그곳에 오래 살아 본 사람처럼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지리적 환경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설명해 가며 수많은 것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밑동이 어마어마하게 큰 바오밥 나무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는데 그때 아빠의 얼굴은 평소 쉽게 보지 못하는 천진난만하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아빠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는 통에 내 다리는 저렸고 그럴 때면 나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게임 속 캐릭터를 상상하기도 했다.
아빠는 세계지도가 붙어있는 큰 창 너머의 세상을 보며 가끔씩 답답함을 토로했다. 끝내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읊조리며 자신의 삶에 불행이라는 단어를 연결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끝내 벗어나지 못할 거 같다던 이곳을 왜 하필 지금 떠나게 되었는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쯤 아빠는 어떤 나라를 여행하는 중일까?
여전히 어두운 집 안의 풍경은 적막하고 숨을 쉴 틈이 없었다. 분명 집안에는 누군가 있었지만 마치 벽이나 가구와 같은 형태로 그들은 늘 어둠 속에 숨어있었다. 어둠에 잠식된 곳을 벗어나 내 방으로 들어오면 그제야 환한 빛 속에서 숨다운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책상 의자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책장 속에 아무렇게나 꽂힌 책들을 바라보았다. 그 책들은 마치 헝클어진 내 마음을 보는 듯 어지러웠다. 그리고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아빠가 얼마 전 보내왔던 메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수오야, 잘 지내고 있니?
급하게 오느라 너에게 미처 인사도 하지 못했구나.
아빠는 배낭에 긴 깃발을 꽂고서 나의 오랜 꿈이기도 했던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란다.
이건 비밀인데 엄마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기로 아빠와 약속해 줄 수 있지?
아빠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오천 년이 된 바오밥나무를 찾고 있는 중이야.
예전에 아빠와 함께 읽었던 어린 왕자라는 책 생각나니?
어린 왕자는 자신의 행성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바오밥나무를 두려워했지만 사실 그것은 몇 천 년을 살아가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진 나무란다.
하늘로 솟은 크기만큼 땅 속으로 뻗어 난 뿌리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지.
아빠가 오천 년이 된 바오밥나무를 찾으러 가는 이유는 공포나 불안, 내 삶을 갉아먹는 불행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속에 끈질긴 생명과 희망이 담겨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그것을 찾게 되는 날에는 우리 인수의 병도 낫게 될 거란 희망을 가지며 오늘도 아빠는 부지런히 앞만 보고 나아가고 있는 중이란다.
오 년만 있으면 치매를 낫게 하는 약이 나온다고 방송에서 그러더구나.
엄마에게 조금만 더 참고 견뎌달라고 아빠 대신 말해주겠니?
수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수오가 엄마를 도와서 형을 많이 보살펴주길 바란다.
-세상에서 수오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