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7
형의 병명을 알고 난 뒤에도 우리의 일상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는 평소처럼 우체국 마크가 달린 점퍼와 모자를 쓰고 출근을 했고 엄마는 여전히 형의 방문을 열어두고 생활했다. 나는 더 이상 형이 내 식탁의자에 앉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형이 내 자리에 앉던, 엄마의 자리에 앉던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은 여전히 잠만 자며 그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밤에는 불이 꺼진 깜깜한 방 안에서, 낮에는 암막 커튼이 쳐진 빛이 차단된 곳에서 내내 그렇게 있었다. 가끔씩 산책을 나가자는 엄마의 말에 형은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거나 그래서 화가 난다거나, 도저히 기운이 없어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거나, 도대체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노라 말하며 분노했고 또 미안해했다.
그래도 형은 엄마의 부탁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는 날도 있었다. 여전히 옷을 갈아입는 그 사소한 일마저 힘겨워했지만 엄마는 곁에서 형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감내했다.
혹여나 중간에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을 형이 포기하게 될까 봐 엄마는 다시 어린아이를 키우듯 어르고 달래며 형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하늘하늘한 파스텔톤 원피스는 그토록 원하던 따뜻한 봄바람 한번 느껴보지 못하고 계절이 바뀌어가고 해가 바뀌어가며 서서히 서랍 속에서 그 고유한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가도록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열 번이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갈 뿐 정작 전화기의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 꺼진 형의 방 안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엄마는 통화버튼을 눌렀고 한 손으로는 손톱살을 물어뜯었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이곳저곳을 서성대며 엄마는 내내 그것을 입 안에서 질겅거렸다.
그때 익숙한 벨소리가 들리고 깜짝 놀란 엄마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 찍힌 번호는 아빠의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흥분한 듯 나지막한 소리로 통화를 하고는 급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엄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빠는 집으로 오지 않고 엄마는 수척해진 얼굴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 나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지만 말할 힘도 없었는지 얼른 들어가서 자라는 짧은 손짓만 하고서 엄마는 그렇게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침이 되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제일 먼저 일어나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빨개진 눈과 굳은 얼굴을 빼고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었다. 형은 여전히 내 자리에 앉았고 나는 형의 자리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빠의 부재만 빼면 말이다.
형이 아프고 난 후 엄마는 울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형과 아빠 앞에서는 특히나 그랬다. 엄마는 종종 안방 침대 옆에 있는 조그만 협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통화를 하고 난 뒤에는 꼭 눈 주변이 토끼처럼 빨갛게 변해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빠가 집에 오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된 것도 엄마가 외할머니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꽉 닫혀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아빠라는 단어는 온통 나의 신경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날 아빠는 우체국이 아닌 경찰서에 있었던 모양이다.
아빠가 왜 엄마 몰래 우체국을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에게 퇴직금을 모두 줘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평생 남 뒤치다꺼리만 해주더니 결국은 그런 인간들에게 뒤통수만 맞았다는 말을 하며 엄마는 울먹거렸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