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에 난데없는 북한 무인기 ‘도발’ 논란이 정국을 휘젓고 있다. 북한은 지난 26일 무인기 5대를 경기도 김포와 파주, 강화도 일대 등 민간인과 마을이 있는 지역까지 날려 보냈다. 느닷없는 북한의 ‘시험’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 결과는 낙제점 수준이었다. 군은 공군 전투기, 공격헬기, 경공격기 등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결국 격추에 실패해 ‘파리를 잡는 데 망치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륙하던 KA-1 전술통제기 1대가 추락해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보여준 안일한 대북 대응 태세는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북한 무인기 ‘도발’은 국민들의 안보 의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이 ‘수시로’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동해로 발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발이기에 무신경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5시간 동안 휘젓고 다닌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찰용 드론이 아닌 실제로 탄저균 등 생화학 무기를 장착한 드론이었다면 엄청난 살상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전면전 가능성 때문에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그럼에도 이번 무인기 ‘도발’로 드론의 파괴력과 위험성을 전 국민이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번 기회에 우리 군도 북한의 무인기 ‘도발’ 의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따른 대응 능력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무인기 ‘도발’ 후 즉각적으로 보여준 반응과 대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자신이 ‘챙겨야’ 할 군 관련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사건이 일어난 뒤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거나 어떤 발언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예정된 만찬을 소화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무인기가 서울 상공까지 날아든 상황이라면 국민들이 북한의 도발을 구체적으로 체감하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대통령이 NSC를 소집해 즉각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은 너무 느슨하거나 비상사태에 대해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대통령이 북한의 사소한 ‘도발’에도 NSC를 여는 것이 국민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북한 무인기 ‘도발’은 국민들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기에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지 않은 데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쟁 중에는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해명을 했다. 하지만 NSC는 토론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적인 비상사태 대응 시스템으로 여기에서 즉각적인 대응 태세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NSC를 ‘토론을 하는 자리’ 정도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변명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NSC 개최 대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실시간 대응했다”고 밝혔다.
또한 비상사태 발생 시 대통령의 첫 번째 반응이나 ‘워딩’은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고 국민들에게 책임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개최된 제57회 정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보여 준다”며 문재인정부의 책임론을 ‘먼저’ 꺼내들었다. 물론 대통령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지난 5년 간 우리 국방대응태세가 느슨해지고 군의 기강과 훈련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을 넘겨받은 지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윤 대통령이 무인기 ‘도발’의 근원을 문재인 정권으로 넘기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가안보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정치평론가’들이 제3자의 입장에서나 할 법한 말을 함으로써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면피만 하려 한다’는 인식과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전 정권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군의 대응 태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대통령의 국가안보 무한책임의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한다. 자칫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전 정권 ‘핑곗거리’만 찾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중대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련자들에게 격노했다는 전언이 빠짐없이 흘러나오는 것도 ‘리더십 관리’의 실패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실은 북한 무인기 사건에 대한 윤 대통령과 군의 대응이 미비하다는 비판이 연일 나오자 28일 고위관계자를 통해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이 27일 지하벙커 회의 도중 윤 대통령에 중간보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안보실장이 (합참대응에 대한) 답답함을 보고 했고, 윤 대통령이 우리 군 대응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취지로 이종섭 국방부장관을 향해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발생 때에도 경찰이 112 신고를 11건이나 접수했지만 제대로 된 현장 대응을 하지 않은 등 늑장 대처한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 크게 격노했던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윤 대통령이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그 관련자들을 질책하고 화를 내는 게 당연시되는 것 같다. 물론 윤 대통령이 격노할 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정황을 강조하기 위해 그랬겠지만 대통령의 ‘화’를 자주 접하는 국민들은 의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정과 국가안보의 최고책임자는 바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인기 몇 대에 대한민국 영공이 탈탈 털린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국민들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민들의 ‘격노’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가에 중대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어떤 사과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아랫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질책을 한다는 게 먼저 알려진다. 사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은 국민들과 언론이 보지 않기에 참모들이 흘린 것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 격노 사실을 전하는 참모들은 국민들 눈치를 먼저 보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만 살피려 하는 보신주의와 관료주의적 행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윤 대통령이 ‘자나 깨나’ 몇 번이나 지시하고 독려했음에도 군과 경찰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다. 그럼에도 일의 선후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이 우리의 하늘이 무방비로 뚫린 것에 대해 군 통수권자로서 진실 되게 사과를 한 뒤 참모들을 질책하고 격노했다면 국민들도 이해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책임과 허물에 대해서는 ‘눈코입’ 닫고 아랫사람들만 들볶고 격노한다면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시키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곁에 있는 참모들은 ‘어떻게 하면 대통령에게 사건 책임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에 대한 참모들의 ‘과잉보호’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의 그런 관료주의적이고 수동적인 행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30여년을 상명하복과 수직명령체계에서 살아온 ‘검사’ 윤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태도’일 것이다.
참모들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해야 한다. 무인기 ‘도발’에 대해 윤 대통령이 책임 있는 사과를 해서 솥뚜껑 보고 놀란 국민들 가슴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참모는 왜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북한 무인기 도발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이란 말인가.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 탓이오’라고 해도 그를 질책하고 격노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무한책임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더 격려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