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의 ‘대리전’으로도 평가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선거 초반부터 만만하고 말 잘 듣는 ‘아부형’ 김기현 대표를 점찍고 밀어 올리자 이준석 전 대표는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개혁 4인방의 선거 전략을 주도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서로 ‘내가 잘 났다’며 티격태격 싸움을 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도 윤 대통령에게 ‘토사구팽’ 당한 이 전 대표의 ‘복수전’으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결과는 이준석의 완패였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숨어 있는 개혁성향 표’를 공언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지난 2021년 전당대회 이후 50여만명의 새로운 당원이 유입되면서 당의 이념성향도 중도확장 됐다’며 ‘85만여명 당원 가운데 이준석 표가 10만-15만 정도 될 것’으로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실제로 전당대회 1차 예선에서 ‘천아용인’이 전원 당선되자 이준석의 큰소리에도 더욱 힘이 실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사실 이 전 대표는 2021년 자신이 당 수장으로 등극했던 전당대회를 비롯해 대선과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비교적 판세와 승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정치인으로 통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내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덤빈 이번 전당대회 예측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준석 대리인’ 천하람 순천 당협위원장의 득표율은 6만9122표였습니다. 이 전 대표의 최소 예상 득표율 10만표에 절반을 조금 넘긴 수치입니다. 이 전 대표는 내심 15만 많게는 20만표까지 예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득표를 통해 최고위원 2명(김용태 허은아)의 지도부 입성도 기대했지만 전원탈락이라는 쓴 잔을 마셨습니다.
이번에 천 위원장이 얻은 14.98% 득표율은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득표했던 43.82%에 크게 부족합니다. 물론 당시의 선거 이슈와 후보 경쟁력 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 전 대표가 2021년 얻었던 표의 절반이 이번 선거에서는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당원 투표에서는 5만5820표(37.41%)로 나경원 전 의원의 6만1077표(40.93%)에 못 미쳤지만 일반여론조사에서 3만7572표(58.76%)로 나 전 의원의 1만8074표(28.27%)를 압도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당원만의 투표에서도 이 전 대표는 당시 37%를 득표했지만 이번에 천하람 위원장은 15% 득표에 그쳤습니다.
이 전 대표측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천아용인’이 득표율 25%로 11만7000표 이상을 얻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 전 대표의 계획대로 후보 4명이 모두 11만7000표 이상을 얻었다면 김기현 대표의 과반 저지와 최고위원 2명의 지도부 입성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최소 예상득표에 4만여표 차이가 나면서 4명 전원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선거 뒤 “두려움 없이 임했다”면서 완패를 자인했습니다. 그 패인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도 나옵니다. ‘이준석 전 대표가 너무 나대다 당원들의 미움을 샀다’ ‘이 전 대표가 친윤계 조직표를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망하기를 바라는 듯한 천아용인의 무책임한 내부총질에 역풍이 불었다’는 등의 ‘뒷담화’를 이 전 대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개혁성향 후보들의 득표율이 자신들이 예상한 수치보다 크게 못 미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선거 룰 개정’이 컸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준석 전 대표는 ‘당심’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밀렸지만 일반여론조사 ‘민심’에서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앞서면서 ‘0선 30대’ 대표 등극의 기적을 이뤘고 그런 보수정당의 쇄신 의지와 확장성 노력이 대선 승리에 기여한 측면도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대선 승리에 기여했던 ‘젊은 당수 탄생’같은 드라마 자체를 원천봉쇄 시켜버렸습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엄석대’에 비유해 논란을 야기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을 깡패에 비유했다’며 ‘친윤계’들이 들고일어났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번 전당대회는 ‘엄석대’가 지배한 선거이기도 했습니다.
전당대회 전 승리를 위해 머리를 맞대던 ‘친윤계’와 ‘엄석대’는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룰처럼 선거를 치를 경우 ‘우리 편’이 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서자 아예 뽑는 방식을 바꿔버리자는 꾀를 냈고 결국 그것이 ‘김기현’이라는 ‘엄석대 아바타’를 탄생시킨 배경이 됐습니다. 지는 경기를 이기기 위해 자기가 유리한 대로 싸움 방식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엄석대 식’ 갑질 횡포입니다. 만약 이번 전당대회 룰을 2021년 선거 때와 같이 치렀다면 ‘천아용인’의 득표율은 적어도 그들의 예상치에서 모자란 4만표 이상을 더 얻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엄석대’파들이 유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여 놓고 이긴 뒤 그들이 보인 ‘승리 세리머니’는 꼴불견이다 못해 무자비한 폭력처럼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과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등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당선 첫 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이준석 몰매’에 돌입했습니다.
특히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 전 대표가 보여준 수많은 태도에 대해 당원들 중에는 ‘항상 당의 진로에 방해가 되고 심지어는 당을 망가뜨리려 한다’는 인식을 갖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경기장에서 난폭한 관중을 ‘훌리건’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실제 선수로 뛰어든 훌리건 아니었나”라고 비꼬았습니다. 이밖에도 ‘엄석대는 이준석이었다’(조수진 최고위원) ‘천아용인 패인은 이준석이 빠져주지 않아서였다’(장예찬 청년최고위원) 등의 독설이 이준석 전 대표의 등짝을 두들겼습니다.
정치판 선거만큼 치열한 생존게임도 없습니다. 선거기간 동안 온갖 유언비어와 마타도어가 난무합니다. 그 과정에서 경쟁자들은 선거를 잊고 감정싸움에 목을 매고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유독 정치판에서 수십년동안 이룬 복수극이 많은 것도 선거 때에 쌓인 깊은 앙금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대체로 승자는 패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화합’을 입에 달고 삽니다. 김기현 대표도 겉으로는 ‘연포탕’(연대 포용 탕평)을 먼저 언급하며 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당내 갈등을 봉합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투표 용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김재원 조수진 장예찬 등의 ‘엄석대 꼬붕’들이 보인 언행은 훌리건의 폭력적인 세리머니를 연상케 합니다. 훌리건들은 승리가 확정된 뒤 패자를 조롱하는 세리머니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천아용인’을 경기를 뛴 훌리건이라고 했지만 정작 지도부 승자들이 당선 첫 날 패자에 대해 쏟아낸 조롱과 비아냥이 더 ‘훌리건스러운’ 행태로 보입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정치가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혐오와 분노를 자극해 젊은 층의 표를 꾀어보려는 얄팍한 정치 술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준석의 정치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준석 전 대표측은 “이제 한 챕터가 끝났다. 엔딩이 아니다. 다음 챕터를 착실히 준비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혁4인방이 이번에는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다음 선거에서 또 유용한 ‘쓸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국민의힘의 든든한 미래자산이기도 합니다.
새로 등극한 ‘엄석대 지도부’는 이번 전당대회를 ‘이준석의 정치적 추방’이라고 규정했지만 그것은 본인들의 기대일 뿐입니다. 선거 한 번으로 정치생명이 끝나기를 바라겠지만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정치판에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새 지도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승리를 했다면 그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패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손목 비틀어 이겨놓고 좋아하며 엎어진 패자를 우르르 몰려가 두들겨 패는 ‘훌리건 정치’를 국민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목도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