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불과 1년이지만 이 기간 동안 한국 정치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시간 가운데 혼자서 59분 동안 이야기하는’ 대통령의 독특한 캐릭터를 대하면서도 국민들은 ‘그래도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썩은 정치판을 좀 바꿔주겠지’ 하는 인내심으로 윤 대통령을 지켜본 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권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며 윤 대통령의 ‘정치력’을 기대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짝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점이 바로 정권 출범 1년이 아닐까 합니다. 한 언론사 정치부장이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을 ‘술 취한 삼촌’ 같다고 표현한 것을 보고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이 삐져나왔지만 ‘윤석열 집권 1년’을 대하는 국민들의 대체적인 ‘인상비평’으로 이해합니다.
윤 대통령은 기존 정치와 별다른 인연이 없기 때문에 ‘적폐’를 청산할 적임자로 꼽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윤 대통령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는 국민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점차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정치적 퍼포먼스 중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바로 ‘검찰 정권’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109명 중 사법시험 출신은 16명, 이 가운데 12명이 검찰 출신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1기 내각 104명 중 사시 출신이 5명, 이 가운데 3명만 검찰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기에 당연히 팔이 안으로 굽은 인사 결과이긴 하지만 현재 드러나는 ‘검찰 권력’의 양태는 심각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사가 아니면 이를 맡길 수 없다는 듯 장·차관급에만 검사 출신이 13명이고, 부처에 파견된 현직 검사까지 포함하면 70여 명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비서실을 검찰 출신으로 채운 것만도 부족해 금감원, 국정원, 교육부, 국민연금공단 등 온 부처에 검사 출신을 발탁 파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윤 대통령 단골 메뉴대로 ‘일만 잘한다면 출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하는 그 ‘일’이 내가 하기 쉬운 일만, 내 편만 골라서, 내 편한 대로 해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윤석열 정권’ 출범 1년 만에 ‘검사들의 세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넘쳐납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육사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며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마음껏 주물렀습니다. 여기에 ‘육법당’이라고 해서 육사 출신 군인과 법률가들이 결탁해서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전격 청산하며 육사 출신은 권력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재야 출신 등의 다양한 분야 출신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 시기부터 언론인과 재야 법조인, 고위직 공무원 출신들도 정치 요직에 등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친이’계가, 박근혜 정권에서는 ‘친박계’가 권력의 핵심이었습니다. 대부분 지역구에 터를 잡은 의회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386그룹’이 권력 전면에 등장했지만, 그들은 ‘노무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어설프게’ 검찰개혁에 손을 댔다가 ‘윤석열 검찰 그룹’에 되치기당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중에서 필자의 눈에 가장 생경하게 비친 직업이 바로 ‘검사’입니다. ‘검사’들은 일단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들은 ‘기소 독점주의’라는 우월한 DNA를 가졌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 얘기를 잘 경청하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 영장도 칠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어떤 상대든 얕잡아 보고 자기 할 말만 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권위적입니다. 상대 이야기를 잘 듣는 척하지만,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늘어놓고 상대에게 은근히 알아서 기거나 ‘검사’ 기분에 맞춰주기를 바랍니다. 잘난 척도 많이 합니다. ‘겸손한 검사’만큼 형용 모순적인 표현도 없습니다. 남들이 알아서 받들어주고 대우해주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검사(구속영장과 기소)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거나 타협할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이런 검사들의 ‘오만한 직업병’은 불철주야 골병이 들도록 일을 하며 악당을 잡아넣고 ‘나만이 대한민국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사명감이 굳은살로 박혀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 검사의 ‘건방짐’이 ‘패거리 문화’라는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타나고, 그런 ‘영감님’들끼리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지경까지 이른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사회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마치 자신의 무한능력 때문인 것으로 착각하고, 2000명 ‘검사 엘리트 집단’이 똘똘 뭉쳐 “검사들만이 썩어빠진 정치를 바꿀 수 있고 무질서한 사회도 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2000명 중에서도 특수부 ‘성골’ 출신들은 윤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 오른발 왼발이 되어 국가 요직에 문어발 촉수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검찰 집단은 권력의 중추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호시탐탐 그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초기 ‘검사들과의 대화’를 했을 때 보여준 ‘기개 있는 척하는 검사’들의 ‘항명 사태’는 검사들이 평소 정치권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해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계급장을 스스로 떼고 ‘감히’ 대통령직에까지 베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검사 선민의식’의 도도한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검찰 출신의 ‘패거리 문화’는 끼리끼리 주고받고 연결돼 있습니다. 서열 의식과 상명하복에 익숙해 있어 오로지 명령(비록 무능한 선배의 잘못된 명령일지라도)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자기들끼리 부패해도 고치거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빗나간 사명 의식과 특권의식으로 일을 잘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냥 덮고 넘어갑니다.
윤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지 1년이 됐습니다. 여러 가지 비판이 많지만 ‘검사들의 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권위주의로의 퇴행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조심스럽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정순신 변호사에 대한 국가수사본부장 인사 검증 실패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정권 때 청와대 민정라인의 ‘정치적 검증’에 문제가 많다며 법무부 중심의 공정한 인사 검증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설레발을 쳤습니다. 하지만 정순신 낙마 사태가 발생하자 인사 검증에 ‘만기친람’하던 한 장관은 ‘나는 전혀 몰랐다’며 뻔뻔하게 발뺌하며 책임을 비껴갔습니다.
아들의 학교폭력을 덮기 위해 대법원까지 가는 ‘법 테러’로 피해자에게 2차, 3차 가해까지 저질렀던 정순신 변호사를 검찰 출신이라는 이유로 국가수사본부장직에까지 밀어 올리는 게 ‘검사들의 나라’ 민낯입니다. 국민들은 정순신 낙마 사태를 보면서 힘깨나 쓰는 ‘검찰 출신 이너스쿨’의 비열한 권력남용에 분노하고, 또 슬퍼하고 있습니다.
검찰 ‘패거리 문화’는 끼리끼리 추천하고 끌어주다가도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책임하게 발을 빼고 뭉개기로 일관합니다. 검사는 무결점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밥 먹고 선수만 쌓아온 ‘여의도 정치인’들은 ‘윤석열 검사들의 나라’를 보고 반성을 많이 해야 합니다. 검사들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도 모자라 그 잘난 금배지 하나 때문에 그들 뒤꽁무니에 붙어서 온갖 아부와 아첨을 해대는 꼴들을 국민들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이 나라는 완전히 검사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검사들이 정치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검사들의 세계에는 오로지 명령과 복종만이 있다’는 것을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통해서도 똑똑히 목도했습니다. 이제라도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고 ‘의회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권 1년은 ‘검사들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 정치를 파괴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결국 이성적 토론과 합리적 타협만이 수렁에 빠진 정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의 무기입니다. 그동안 묵묵히 ‘검사들의 나라’를 지켜본 국민들이 내년 총선에서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