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인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단위까지 확대하는 개편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안대로라면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해져 노동자들을 ‘법적으로’ 혹사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마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제정은 오래 됐다. 지난 1953년 하루 8시간, 주 48시간만 일할 수 있다고 법으로 못을 박으며 처음 법정 근로시간이 제정됐다. 당사자 합의에 따라서 주 60시간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주당 근로시간은 법으로만 명시됐을 뿐 현장의 상황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만 해도 수출 증진을 이유로 근로자들을 ‘갈아 넣는’ 시기였기 때문에 누구도 법정 근로시간에 대해 토를 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주당 근로시간은 68시간까지 늘어났다가 현행 주 40시간, 최대 52시간 근로를 법으로 정한 게 지난 2018년 2월이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근로시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그 결과 주 40시간 근로로 개편해 유예기간을 거쳐 이제 4년 정도 시행해오고 있다.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데다 주 4일 근무가 더 효율적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정부가 주 40시간 근로로 줄인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6일 시대와 역행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법으로 주 40시간을 정해놓아도 ‘야근’에 관대한 회사 분위기 때문에 40시간을 넘겨 일을 해야 하는 걸 감수해 왔는데, 아예 법정 근로시간을 더 연장하게 되면 ‘야근에 야근’을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할 판이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주 52시간의 총량은 유지하되, 연장근로 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 근로도 가능해지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 취지는 ‘근로시간을 총량제로 관리해 바쁠 땐 일을 몰아서 하고, 한가할 땐 휴가를 몰아서 쓸 수 있도록 유연화하자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획일적인 근로시간 체계에서 벗어나, 노사 간 합의를 통해 근로 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자는 게 정책의 핵심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개정안을 직접 발표하면서 “2018년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지만,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 1주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주 단위로 관리된 연장근로시간을 노사가 합의한 경우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힌 것이 핵심이다. 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을 월 최대 52시간 등으로 총량 계산해 일이 많은 시기에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정책으로 보이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는 현실은 정부 정책과는 전혀 딴판이다. 노동현장의 실질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 정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 복지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중소기업이 99.8%(2019년 기준 688만개, 종사자 수 1744만명으로 전체 82.7%)를 대다수를 차지하고 대기업은 0.2%(2022년 기준 2108개)에 머물러 있는 현 경제상황에서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합법적으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근로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에게로 돌아간다.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면서 노동계와의 긴밀한 협의는커녕 오히려 화물차 파업 사태 등을 ‘진압’하며 강경일변도로 나가며 ‘귀’를 닫아버렸다. 당연히 근로시간 개편 정책에 노동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계가 반대를 해도 윤석열 정부의 ‘비타협 강경 노동정책’에 묻혀 버렸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부터 강력하게 주장해온 ‘대통령만의 노동시간 개편 의견’에 충실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웬만한 정책 반대에 대해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지지율 폭락이 예상되자 서둘러 ‘재검토’를 지시하는 이례적 ‘정치 행보’를 보였다. 특히 2030 지지층을 국정운영의 강력한 ‘원군’으로 설정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비판론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여론 청취와 소통’을 강조하며 지체 없이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김은혜 홍보수석도 15일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노동시장 정책 핵심은 MZ 근로자”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200만명의 노조원을 가진 양대 노총이 반발할 때는 꿈쩍도 않더니 6000명이 가입한 MZ노조 연합체가 공개 반대하자 신속히 대응에 나선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온다. MZ 세대가 윤 대통령 지지층에서 이탈할 움직임이 보이자 대통령실과 정부도 비상이 걸린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2030은 윤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이었다.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가까스로 이겼을 때 20대는 45.5%, 30대는 48.1%의 지지를 윤 대통령에게 보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2030의 지지율은 30%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대선 승리 공식인 ‘세대 포위론’을 내년 총선에서도 밀어붙여야 하는데 2030이 이탈하게 되면 60대 이상과의 ‘연합작전’으로 40대 야권 지지층을 포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부랴부랴 재검토를 지시하긴 했지만 이번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입법 직전 단계까지 이른 정책을 대통령 말 한마디에 다시 뒤집힌다면 그 자체로 정부 정책에 심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MZ 세대 등의 반대가 뻔히 예상됨에도 대통령의 ‘명령’만 생각 없이 따르다가 낭패를 당한 노동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양대 노총이 반대를 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윤 대통령이 주요 표밭인 MZ 세대가 들썩거리자 정책 자체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총선 승리를 의식해 정부정책을 정치 정략적으로 왜곡하는 선례도 남기게 된다. 이번 근로시간 논란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대통령 오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인 무능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