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내홍이 확산과 봉합의 기로에 섰습니다. 애초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당내에서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압박이 거셌지만 이후 이 대표가 당내 소통을 강화하면서 ‘질서 있는 퇴진론’으로 분위기가 ‘톤 다운’ 됐습니다. 그리고 이 대표가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의원들과 만난 뒤 전면적 인적 쇄신으로 양측이 ‘타협’을 하면서 한때 들불처럼 일었던 ‘사법 리스크’ 불길은 당직 개편으로 축소 진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수장에 오른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 이후 당내 ‘퇴진’ 압박이 거셌지만 바위처럼 굳세게 버텼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자신의 심복이었던 전임 비서실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았지만 이 대표는 다음 날 바로 장외투쟁에 나가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는 ‘멘탈이 갑이다’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대표로서도 딱히 선택할 길이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대안도 없이 퇴진부터 하게 되면 민주당과 이 대표는 함께 파도에 휩쓸려갈 게 뻔합니다. 이 대표로서는 ‘땔감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는’ 심정으로 윤석열 검찰 정권의 온갖 ‘조리돌림’을 견뎌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결론이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에 대해 “수모를 견디는 힘을 잃지 말고 정치적, 법률적으로 생존(해야 한다)”고 장외에서 격려하면서 이 대표도 다시 마음을 다잡은 듯합니다. 이 대표가 그동안 비약적으로 정치적 입지를 쌓은 것도 ‘잡초 근성’에서 나오는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술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사법 리스크’가 아마도 이 대표 정치 일생에서 가장 최악의 생존환경이겠지만 멀리 희미한 탈출로가 보인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퇴진 압박을 두고 ‘더좋은미래’ 의원들과의 타협을 통해 ‘당직 개편’으로 비켜 갈 명분을 찾았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 지난달 말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언급하며 “내부 혼란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소속 의원들에게 전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 발언의 ‘진의’를 두고 엇갈린 해석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가 하반기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퇴진’을 포함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이 ‘더좋은미래’로부터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받은 직후 나왔기 때문에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직 교체’를 의미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 ‘더좋은미래’ 의원들은 현 지도부가 너무 강성인 데다 ‘친명계’ 색채가 뚜렷해 당의 중도 지향정책과 확장성에 걸림돌이라는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실제 강훈식 더좋은미래 대표는 “당은 당 대표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주변 인물을 새롭게 바꾸면 조금 더 나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도 자신의 거취 자체가 ‘협상 대상’에 오르지 않는 이상 더좋은미래 의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상한선을 ‘친명계’는 당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 대변인 등의 일부 당직자 교체로, ‘비명계’는 사무총장을 포함한 전면적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총괄 조정하는 막중한 자리이기 때문에 ‘친명계’가 섣불리 내 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비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거취 불문’의 타협책에 부합하는 결심을 하려면 사무총장직은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런데 ‘친명계’에서는 사무총장을 내놓게 되면 이 대표의 ‘목숨’도 위험해진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사무총장은 총선 공천관리뿐 아니라 당헌 80조에 대한 일종의 ‘결정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부패연루자에 대한 제재 조항(당헌 80조)에 따르면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와 윤리심판원 조사 요청 권한이 사무총장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가 현재 수사를 받는 대장동 개발 및 성남 FC 후원금 의혹 등 혐의가 법원으로 넘어갔을 경우 그의 ‘거취’를 당 사무총장이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비명계’에 사무총장직을 넘겨주는 최악의 경우 이 대표가 사무총장에 의해 직무 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 사무총장이 공천권뿐 아니라 이 대표의 ‘생살여탈권’까지 쥐고 있기 때문에 ‘친명계’로서는 쉽게 사무총장 자리를 ‘적’에게 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친명계’에서는 사무총장을 뺀 나머지 당 주요 직위를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고, ‘비명계’에서는 사무총장을 넘겨야 이 대표의 당 화합과 쇄신 의지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이 대표를 둘러싼 당내의 사법 리스크 압박은 ‘개인 결단→질서 있는 퇴진→당직 개편’ 등으로 그 강도가 약화했고 마지막으로 ‘사무총장’을 어떤 계파가 차지하느냐가 질서 있는 수습의 마지막 쟁점이 돼버린 셈입니다. 사법 리스크 탈출을 주장하는 비주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타협책일 것입니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4월에 ‘쌍방울 대북 송금’ 수사와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검찰에 의해 제출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잠시 주춤하던 사법 리스크 정국이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습니다. 비주류들은 “당내에 꺼지지 않고 있는 사법 리스크 불길을 잡지 않고 단순히 당직 개편(사무총장)으로 현 상황을 돌파할 계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상민 의원은 “당직 개편에 혹하는 의원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근원은 이 대표에게 있는데 왜 하위 당직자만 바뀌냐. 당직 개편은 당 대표까지 포함한 것이 당직 개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 압박의 강도가 점차 떨어지고 있고 그 위험성도 희석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는 4가지입니다. 이 대표가 날아가면 윤석열 검찰 정권이 그다음 타깃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삼을 것이고 종국으로는 민주당의 씨를 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재명’을 놓는다는 것은 민주당을 내놓는 것과 같다는 위기의식이 당내에 전반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직전 대선에서 1614만7738표(47.83%)의 지지를 받은 대선후보의 경쟁력을 능가할 만한 현실적인 대안주자도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주 69시간 정책 추진 무능 논란과 강제징용 대일 굴욕 외교 등으로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같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 대표의 활동공간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 총선 또한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는 민주당 내의 낙관적 분위기도 이 대표의 허물을 덮어주거나 잊게 해주는 기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애초부터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본인이 ‘정계 은퇴’(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칼럼에서 “내가 (이재명 대표와) 똑같은 상황에 있다면, 대표직을 내려놓는 데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직도 사임하고 아예 정치를 떠날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와 같은 발상의 전환 카드를 뽑지 않는 이상 해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정권의 ‘악마화’에 대한 여론의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대표를 당장 구속할 만한 검찰의 ‘스모킹 건’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사법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갈수록 윤석열 검찰 정권은 급해지고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정치적 운’에 맡기는 분위기입니다. 윤석열 정권 지지율 하락 등의 외부 환경 변화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 덫을 온전히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그 탈출의 열쇠를 잡아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뿌연 안갯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