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이끌 김기현 체제가 출범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특히 김 대표는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으레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마저도 ‘챙겨먹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새로운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년 총선을 앞둔 여당에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후인 지난 14~1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전당대회 당일과 다음날인 8~9일 조사 결과보다 4%포인트 내린 34%, 더불어민주당은 1%포인트 오른 33%를 각각 기록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반사이익으로 지지율 상승세를 유지해온 국민의힘이 새 지도부가 들어섰음에도 지지율이 맥없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예후가 좋지 않은 ‘병세’입니다. 김기현 대표가 전당대회 기간 울산 부동산 시세차익 논란 등으로 공격을 받았음에도 당 지지율은 평타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지지율 추락세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 당에서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김재원 최고위원이 당 지도부 출범 며칠 만에 ‘5·18정신 헌법 수록 불가 발언’ 사고를 쳐 김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69시간 근로개편안 정책 헛발질과 대일 굴욕외교 논란의 장본인으로 떠오르면서 국민의힘 지지율도 같이 추락했습니다.
사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의 당무개입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 국민의힘도 동반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벌써부터 그 전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김 대표가 사무총장 등 당 주요직위를 모두 윤 대통령 ‘오더’를 충실히 따라 ‘친윤계’ 일색으로 도배를 한 것이 ‘김기현’에 대한 기대 자체를 소멸시켰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당연히 신임 지도부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세가 더 심각한 것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18~29세)의 지지율이 썰물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떨어져나가 13%로 집계됐다는 통계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2022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20%선이 붕괴된 것이라 국민의힘도 좌불안석입니다. 20대 지지율은 전체 연령대의 평균 지지율(34%)보다 20%포인트 이상 낮고, 민주당 20대 지지율(2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민의힘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2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20대와 60대 이상이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4050세대를 견제한, 이른바 ‘세대포위론’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선거 불과 1년여 만에 유독 20대 지지율만 눈에 띄게 빠지고 있습니다. 최근 윤 대통령이 주 69시간 유연근무 논란에 대해 비판을 무릅쓰고 재검토를 지시한 것도 20대 지지층의 이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MZ 세대로 대변되는 20대 지지층은 ‘일’에 대해서는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고 자기중심적인 이해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이번 국민의힘 지지 이탈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당 지도부가 전부 ‘친윤계’로 장식된 점도 다양성을 중시하는 MZ 세대의 상당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청년과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이 단 한 사람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했고 김기현 대표도 이런 불균형 인사에 대해 전혀 손을 쓰지 않으면서 청년지지층이 김 대표 체제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김기현 대표 체제가 편하겠지만, 다양성과 확장성을 잃은 ‘용산 단색’의 국민의힘은 정치적 매력이 없는 ‘꼰대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인기 없는 얼굴마담’으로 낙인이 찍혀 반전의 계기를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른 것이 민생행보입니다. 김 대표는 20일 최고위에서 민생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는 “민생특위를 구체적인 성과를 만드는 특위로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민생은 정치인의 가장 만만한 지지율 회복 아이템이라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김기현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으레 전임대표들이 해왔던 진부한 길을 ‘기계적으로’ 따라가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민생을 챙긴다고 해도 용산 대통령실이 오케이 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민생 코스프레’로는 굳게 닫힌 20대 지지층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김기현 대표는 황교안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취임한 지 1년 3개월여만에 4.15 총선 대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습니다. 황 대표는 21대 총선에서 태극기 극우세력과의 연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통.무능의 리더십을 시전하다가 103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더불어민주당(180석)에 대 참패, ‘역대급 패장’으로 불립니다.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해 코로나 방역 소독을 하는 장면은 지금도 젊은층의 조롱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황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부정적 정서가 아닌 그가 가진 강경보수의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합니다. 황 대표는 당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단식도 불사했지만 국민 3명 중 2명은 ‘공감하지 않는다’며 기득권 정치인의 ‘황제단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렇듯 황 대표는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어떤 ‘정치적 이벤트’를 해도 그것이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야당과 젊은층의 공격 소재만 더 제공하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개혁성향 인사를 영입해 지도부 색깔을 다변화하는 등의 쇄신책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외골수 행보를 고집하다 결국 역대급 참패를 자초했습니다.
지금의 김기현 대표도 황교안 전 대표가 깔았던 ‘모노레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김기현 대표는 황교안 전 대표(법무부 장관-국무총리 역임)처럼 기득권 이미지가 강하고 정치성향도 ‘강경보수’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인으로서 이슈를 주도해 정국을 이끌어나가는 역량도 검증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에서 4선을 하는 동안 공천권을 보장받기 위해 철저하게 권력에 기생하는 행태를 보여 주었습니다. 정국을 주도하는 독자적인 정치역량이 떨어집니다. 정치인의 능력 척도가 되는 선거 주도력도 부족합니다. ‘공천=당선’ 지역에서만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수도권 험지에서처럼 이슈 파이팅으로 격전을 치르는 공중전을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리고 김 대표는 국민의힘 권력구조에 갇혀 독자적 행보를 할 공간도 없습니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기’ 외 이렇다 할 선거 전략이 없습니다. 김 대표가 당의 간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인 데다 윤 대통령 ‘1인 플레이’의 조연에 만족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가림막에 가려져 김 대표의 독자적 행보도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고 용산과 여의도의 시너지 효과는 거의 없게 됩니다.
김기현 대표가 당의 축 처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개혁성향 세력도 중용해 적어도 외향적으로는 당의 다양성 추구 노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동시에 김 대표 자신도 ‘윤석열 인형극’에서 벗어나 ‘정치인 김기현’의 비호감도를 줄이고 매력도를 높여나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집권여당 대표직의 스타트를 끊은 김기현의 앞날에 벌써부터 ‘역대급 패장’이었던 황교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