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잠잠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드디어 정국 핫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지난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수사권 조정)법의 절차에는 문제가 있지만 법률로서의 효력은 유지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기이한’ 판결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는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그 법이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헌법재판관들이 법률가의 양심을 거스르고 정파적 결정을 내렸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헌법재판소의 난해한 ‘눈치 보기’ 판결로 ‘검수완박법’은 여야가 서로 자신들의 주장이 맞는다고 우기는 ‘회색지대 전쟁’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여야는 또다시 사법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와 민생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자기들 밥그릇 싸움으로 날이 새게 생겼습니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기득권 정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결론 없는 정쟁을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쟁은 한동훈 장관이 자신의 대권 가도를 열기 위해 걸었던 무리한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두고 한 장관의 ‘완패’라는 해석을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장관이 법률적으로, 또는 장관의 행정 능력에서 볼 때 ‘완패’일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일개’ 장관에서 여의도 대권주자로 ‘승천’하는 기회를 잡은 것과도 같습니다.
먼저 법률적인 문제를 짚어 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요지 중 핵심은 한동훈 장관이 수사권 개정법에 대한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한 장관이 수사권 행사를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 수사권 조정 개정법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봤습니다.
사실 애초부터 법조계에서는 한 장관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을 때 그럴 자격이 없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수사권 행사를 직접 지휘할 위치(검찰총장에 있음)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헌법재판소도 이렇게 보는 견해가 우세했습니다. 한 장관이 검사의 수사 권한 축소 법안(검수완박법)의 위헌성을 따질 자격이 없음에도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장관은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에 전제돼 있는데도 검수완박법으로 그것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이 또한 이미 헌법재판소가 ‘수사권은 입법 정책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얼마든지 조정해 법률로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검찰 수사권 조정은 헌법의 가치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입법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 장관도 헌법재판소가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 등에 대해 이미 검찰의 수사권은 입법적 권한이라고 결정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 장관은 이를 무시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동훈 장관은 소송의 주체 적격 여부와 수사권 조정의 입법적 권한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헌법재판소로 달려가 ‘검수완박’에 대한 헌법 적합 여부를 물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장관이 헌법재판소의 판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무리수를 범한 까닭을 ‘정치적인 의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한 장관은 ‘법률적으로’ 이번에 완패했습니다. 법무부 수장으로서 신뢰도에도 타격이 있고 ‘윤석열 정권 이인자’로 잘 나가다 돌부리에 걸린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검수완박’은 오늘의 한동훈을 존재케 한 결정적 발판이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자신의 ‘검찰 수사권 수호’ 의지에 쐐기를 박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 취지와 명분이 적어도 검수완박법으로는 그 ‘헌법적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을 ‘정치적 박해’로 몰아간 한 장관의 명분도 퇴색하는 등 이번에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습니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이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은 어쩌면 검수완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자체가 아니라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동훈이라는 ‘일개’ 장관이 다시 한번 여야 대치 정국의 한복판으로 들어왔습니다. 169석의 거대 야당과 싸우는 정의의 투사로 자신을 포지셔닝 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있을까요.
“‘한동훈’이 보수세력의 대표 ‘아이콘’이 돼 문재인 정권의 불편부당하고 정파적인 검찰 개혁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정도가 한 장관이 꿈꾸는 ‘정치 진출 시나리오’의 한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보수-진보’로 뚜렷하게 정파적 색깔이 갈려 어떤 민감한 소송도 ‘정치적으로’ 좌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한 장관이 소송을 한 까닭은 ‘검수완박’이라면 자동으로 미끼를 물어버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리액션’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한 장관의 탄핵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법안을 통해 축소된 검사 수사권을 법무부 장관이 시행령을 무기로 억지로 회복시키려 한 것이 탄핵 사유라는 것입니다. 일견 타당한 대응 같지만 야당 다른 한편에서는 한 장관 탄핵을 추진했다가, 과거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 직무 정지 징계를 당했다가 대권 주자로 단박에 업그레이드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윤석열 학습효과’가 있었던지 민주당은 한 장관의 탄핵보다 자진 사퇴로 분위기를 정리하는 모양새입니다. “169석 거대 야당이 장관 한 명 잡으려고 총출동하는 것 자체가 ‘한동훈 대권주자 돗자리’ 까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정권 시절부터 권력에 맞짱을 뜨는 ‘정의의 수호자’로 콘셉트를 잡아 대통령에까지 오른 ‘정상 등정 루트’를 한 장관이 그대로 따라가도록 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으로 재미를 본 국민의힘은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 ‘제2의 윤석열 만들기’에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한동훈 장관에 대한 여권 내 역할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로 한 장관이 행정부에서 ‘검수완박’ 폐기(검수원복)를 매조질 공간이 현저히 줄어듦에 따라 그의 포지션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번에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된 ‘친윤계’ 실세 박수영 의원은 ‘한동훈 대권주자 띄우기’의 일단을 내비쳤습니다. 박 의원은 ‘(야당이) 탄핵을 주장하면 국민의힘은 땡큐인가’라는 질문에“한 장관을 셀럽을 뛰어넘어 히어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줄 우려가 있다. 우리 당이 그것까지 주장할 수 없지만 한동훈 개인으로 봐서는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박 의원은 한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등판하면 좋겠다. (중략) 이분(한동훈)이 서울 출신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를 좌우했던 게 영남과 호남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정치지도자로 서울 출신이 나와 지역갈등을 전부 없애버리고 586세대를 퇴장시키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추켜세웠습니다. 여당의 주요 직책인 여의도연구원장이 듣기 민망한 ‘한비어천가’를 노골적으로 부를 수 있는 것도 ‘검사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로 한동훈 장관이 ‘완패’했고 여권의 검수완박 공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하지만 한 장관은 아마 판결 이후 화장실에서 혼자 킥킥거리고 웃었을 것입니다. 이제 한동훈 장관은 한쪽 어깨에 ‘검수완박 훈장’ 하나를 얹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행정부 장관으로서가 아니라 차기 주자로서 야당과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대립하며 철저하게 대권 정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윤석열도 모자라 한동훈 입에까지 ‘밥’을 떠먹여 주려는 민주당의 다음 한 수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