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불구속 기소됐지만 대표직을 유지시킨 지난 22일 당무위원회 결정에 대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가 기소되자마자 곧바로 당무위를 열어 ‘당헌 80조’의 예외조항을 적용받은 것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친명계’는 “이 대표의 거취 문제는 이제 완전히 클리어 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어 양측간의 일전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 22일 오전 이 대표를 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에프시(FC) 후원금 관련 배임과 제3자 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기소된 당일 오후 5시에 당무위원회를 소집해 이 대표가 ‘당헌 80조’를 적용받아 거취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표했다. 애초에는 이때 당무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다음날 ‘비명계’ 일부 의원들이 만장일치가 아니라 기권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며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당무위원인 ‘비명계’ 전해철 의원은 ‘퇴장 후 기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23일 국회에서 ‘당무위원회 관련 추가 브리핑’을 통해 “전해철 의원이 자신의 당무위원회 발언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전 의원은 3가지 반론을 제기한 뒤 기권하고 퇴장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전 의원은 첫째로 당무위를 너무 급하게 소집한 점을 지적했다. 오전 11시에 기소된 뒤 오후 5시에 당무위를 소집하는 게 촉박하고 부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두 번째로 전 의원은 공소장을 심층적으로 검토한 뒤에 논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당헌 해석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 당헌 80조 1항에는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로 되어있는데 기소와 동시에 자동적으로 직무가 정지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당무위 의결이 참석 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설명했지만 이의 제기와 기권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에 김 대변인은 “당무위에 올라온 안건은 정치탄압을 인정할지 여부였다. 전해철 의원은 소집 절차에 대해 말한 것이기 때문에 반대 없이 통과됐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비명계’에서는 ‘친명계’가 이재명 대표의 당무위 ‘당헌 80조’ 적용 절차를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몰아가기’를 해 일체의 논란거리를 차단할 목적으로 서둘러 회의를 진행했다고 하루 지나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퍼지고 있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부패 연루자에 대한 제재 조항으로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 윤리심판원에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3항에는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바로 이 예외가 ‘이재명 살리기’ 원포인트 조항이라는 의혹이 ‘비명계’에서 계속 제기된 바 있다.
전해철 의원은 또한 당무위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의겸 대변인은 당무위가 끝난 뒤 “반대 없이 (이 대표의 직을 유지하기로 한 안이) 통과됐다”고 브리핑했다. 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도 만장일치 결정을 뒷받침 하기 위한 ‘정무적 마사지’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당무위 결정이)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빨리 봉합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또 “(당헌 80조에 보면 기소가 되면) 일단 잠깐이라도 직무정지 절차가 있어야 3항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적용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종민 의원은 또한 “‘답정너 기소’에 민주당이 ‘답정너 당무위’로 대응하는 게 민심에 맞느냐. 이런 일이 쌓여 결국 국민에게 심판을 받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일부 권리당원들은 서울남부지법에 이 대표의 직무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문제가 있는 당직자를 배제시키겠다는 혁신 방안이 이번 일로 무력화되고 형해화됐다. 이재명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정당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법 의혹이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걸 오로지 정치 탄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빠져나간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에 당무위에서 이 대표의 ‘거취’를 일사천리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자 당내에서는 이 대표의 ‘퇴진 논란’은 이제 일단락됐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이에 대해 “앞으로 이 대표에게 퇴진하라는 문제를 거론할 분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퇴진을 언급하는) 그분들도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했고 정치탄압이라는 점에는 전부 다 인정을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우 의원은 또한 “어제 의원총회에서 제가 얘기를 했는데 앞으로 더 얘기하시면 토 다는 게 돼서 본인들도 쑥스러울 것이다. 다만 내년도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시점이 올 때는 다시 말씀할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 의원은 “이 제도를 설계할 때 당시 (제가) 비상대책위원장이지 않았나. 그래서 예외를 인정하는 조항이 생길 경우에는 절차적으로 신속하게 결정해야 된다”고 말했다. ‘비명계’가 주장하는 속전속결 처리에 대해서도 애초에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기소될 경우 ‘당헌 80조’ 때문에 계파 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됐지만 비교적 싱겁게 갈등이 물밑으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검찰의 이 대표 기소장에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주요 당직 개편에도 사무총장직은 내놓지 않고 ‘일부 개편’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 기소를 위기탈출의 계기로 활용하면서 리더십은 오히려 더 탄탄해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에 ‘친명계’에서는 “이제 ‘사법리스크’도 서서히 소멸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