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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06. 2023

양곡법 놓고 벌이는 여야의 ‘패악질 정치’

윤석열 대통령이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거세게 맞붙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자,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로는 약 7년 만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혼탁한 상황에서 집권했지만 재임 기간 중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거부권 초강수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이 개정안에 대한 재투표를 요구하기로 했다. 특히 민주당은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과 방송법 등 쟁점 법안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 번도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은 데 대한 깊은 앙심이 남아있는 데다 이번에 7년 만에 거부권까지 행사하게 되자 민주당은 대통령의 국회 무시 태도가 도를 넘었다며 ‘묻지마 반대’ 전략으로 돌진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을 규정한 간호법 제정안,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을 비롯해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에 대해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 중이다. 모두 윤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쟁점 법안들로 정부 여당도 수차례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쟁점이 될 관련 법안 또한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 기조와 맞지 않아 그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정해진 수순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잇단 본회의 직회부 추진 전략에 대해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확전과 국회 난전을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협치와 소통을 하지 않는 ‘독불장군’ 대통령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묻지마 반대’ 전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윤 대통령이 7년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야당 파트너를 무시하고 1차 도발을 감행한 것은 맞지만 민주당 또한 여권이 거부할 만한 특정 이슈만 콕 집어서 제2, 제3의 ‘전쟁’을 유도하는 것도 도를 넘는 감정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간호법 개정안이나 방송법 개정안 등에 대해 충분한 내부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오로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만한 법안만 골라 전쟁을 벌이는 것도 정당의 숙의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전북 김제시 김제농협 미곡창고를 찾아 도정된 쌀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것보다는 여야 협치의 최고 책임자인 윤 대통령의 처신에 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69석의 거대야당인 민주당과 대화의 문을 닫은 채 툭 하면 ‘다수당의 의회 독주’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해왔다. 이번에도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을 입법 추진하자 보란 듯이 거부권을 행사해 버렸다.


이렇게 여야는 한치 양보 없이 상대가 가장 아파할 만한 부분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격투기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대통령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번에 아주 쉽고 간단하게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를 써버렸다. 그리고 민주당이 제2의 법안으로 다시 싸움을 유도한다면 재차 거부권으로 맞설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할 테면 해보라’는 강심장 전략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여야 협치의 물꼬를 트지 않으면 이번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하락 정체돼 가는 국정운영 지지율은 포기한 듯한 일방독주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또한 다수의석으로 밀어붙이며 윤 대통령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해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다. 여야가 이렇게 민생과 관련된 주요 법안들을 상대 진영에 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한다면 ‘미아’가 된 법안은 결국 폐기될 수도 있다. 애꿎은 법안이 여야의 자존심 대결 희생양이 되고 시의성 있는 법률 제정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무책임한 여야의 ‘패악질’에 대해 국민들은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법안이 마음이 안 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거부를 해버리는 윤 대통령의 무책임한 통치행위를 국민들은 눈 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민주당 또한 오로지 대통령 골탕 먹일 생각에만 골몰해 정작 법안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는 뒷전이고 거부권 유도 법안만 본회의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소매를 걷어붙이기 바쁘다. 이런 민주당의 작태 또한 국민들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정치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여야가 민생과 하등의 관련도 없는 ‘상대 수치 주기’의 유치한 싸움을 해도 그런 행태를 제지하거나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피해 보상도 ‘없던 일’이 돼 버리기 마련이다. ‘대통령 거부권-재투표 요구’라는 사상 유례 없는 정치 실종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통령 거부권이나 탄핵이라는 단어는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금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야가 입만 열면 거부권, 탄핵, 정권퇴진 등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정치는 어느 정당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서로 협의해서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정치의 존재 이유는 없다.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상대가 죽기만을 바라는 ‘저주의 정치’를 국민들은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여야의 무분별하고 명분 없는 싸움에 대한 국민 피해를 계산해 그 보상 책임을 끝까지 묻는 것이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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