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상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패러디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모양입니다. ‘편의점에 간 한동훈’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한 장관이 국회 발언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특유의 ‘반문 화법’을 편의점 상황에 빗대 편의점 직원과 한 장관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야권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한 장관의 ‘고압적’인 의원 대응 방식을 비꼬듯이 풍자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장관들 가운데 정권 실세들이나 현역 의원 출신의 경우 야당 의원들과 ‘거친 말싸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교수 출신처럼 ‘얌전한’ 스타일의 장관들은 국회에 들어서면 주눅이 들기 마련입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위상도 있지만 의원들의 날카로운 추궁에 웬만해선 뒷걸음질 치며 수세적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장관이 된 뒤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을 때 한 장관은 절대 물러서지 않고 ‘싸움닭’처럼 물고 뜯습니다. 그런데 한 장관의 ‘고압적인 대응’은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의원들의 질의에 가타부타 답변을 하지 않고 ‘의원님은 옛날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등의 반문 화법을 즐겨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작전’은 그동안 꽤 잘 먹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어떤 난처한 질문을 해도 한 장관은 막힘없이 과거의 사례나 야당의 일관성 없는 대응 등을 들먹이며 빠져나갈 공간을 만듭니다. 야당 의원이 A라는 질문을 던지면 한 장관은 A-1과 같은 관련성이 있는 답변을 해야 하는데 아예 C를 들이대는 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질문의 본질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 장관은 야당 의원을 자신의 C 공방전으로 유도해 말싸움만 하다가 끝나게 됩니다. 어느새 야당에서 던진 A 질문은 잊혀지고 질의를 한 야당 의원은 권력 실세의 말솜씨(김의겸은 이를 ‘조선의 제 1혀’로 표현했다)를 제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물러나곤 합니다.
그런데 한 장관의 이런 ‘프레임 바꾸기’ 전략도 이제 야당에 의해 어느 정도 간파된 듯합니다. 한 장관이 서울대를 나온 수재이기 때문에 그동안 야당 의원들의 질문 패턴을 명석하게 분석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대응책은 ‘야당 작전’에 말려들지 않고 내가 유리한 곳에서 싸운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문 화법’으로만 버티기에는 한 장관의 ‘정치 이력’은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정치를 격투기 싸움으로 인식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한 장관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한계에 온 것 같습니다. 야권에서 만들어진 패러디라고 해도 ‘편의점에 간 한동훈’이라는 글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일개’ 장관이 그동안 얼마나 부실하고 무책임하게 의정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야당의 질의를 ‘정치적’으로 박살내는 데만 골몰하다 정순신 변호사같은 흠결 있는 공직후보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우를 범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잠시 ‘편의점에 간 한동훈’의 몇 장면을 보시죠.
“카드 앞쪽에 꽂아주세요.”
“저는 카드로 결제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중략)
“결제 뭘로 하실 건데요?”
“제가 물건을 사려고 한다는 건 어떻게 아시죠?”
“물건 골라서 계산대 올려놓으셨잖아요.”
“계산대에 올린 물건을 구매할 것이라는 건 억측이죠.” (중략)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건 그쪽이 알아서 판단하셔야죠.”
“손님 이러시면 영업방해입니다.”
“영업방해를 어떻게 정의하시죠? 제가 서울법대 나온 사람이라 업무방해죄는 더 잘 아는데...”
극단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한 장관의 ‘말’은 국회 청문회나 대정부질의 때 한번쯤 들어본 내용들일 것입니다. ‘대체로 맞네’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국민들이 많았기에 지금 온라인상에서도 화제가 되고 언론에서도 보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장관은 아마 ‘편의점에 간 한동훈’을 보면서 므흣한 웃음을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한 개인의 ‘어록’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치인’으로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정치권에서 ‘한동훈 총선 차출론’ ‘한동훈 대권론’ 등의 부추김이 나오자 한 장관이라고 들뜨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야당 의원들 질의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민감한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행보를 보면 다분히 ‘대권병’에 걸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야당의 군기잡기에 눌리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 기선을 제압해야 앞으로 대권전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연함도 엿보입니다.
그렇게 ‘국회 대응 활동’을 전투적으로 임해서 그런지 한 장관 사전에 실수나 틀림은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웬만해선 그는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정순신 변호사 인사 검증 실패는 민심의 분노에 반응했는지 사과를 했지만). 야당 의원들의 오류 지적에도 끝까지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27일 법사위 때 한 장관은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과거 대검 부대변인 직책에 대해 “대검 부대변인 했다고요, 진짜요?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대검의 부대변인을 했다고요? 저는 처음 보는 이야기인데요”라고 강하게 부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지적이 맞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한 장관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부대변인) 직제가 있지는 않고요. 연구관, 지금 들어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라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의원들을 대하는 한 장관의 태도를 보면 공부만 잘하는 우등생의 무결점주의 엘리트 의식을 보게 됩니다. 심각한 자기 확신에 빠져 ‘나는 절대 실수하거나 틀리면 안 된다’는 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장관이 야당 의원들을 ‘정치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맞서려고만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더욱 살기가 등등해지는 것입니다.
한동훈 장관이 국회에 나타나면 기자들의 귀는 더 쫑긋해집니다. 질의의 내용보다 한동훈과 야당의 퀴즈 맞추기 대결이 더 궁금한 것입니다. 오로지 ‘한동훈을 한번 창피 주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민주당 의원들이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는 것(김남국의 ‘이모’와 최강욱의 ‘한국쓰리엠’처럼)도 ‘안습’입니다.
과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의에 ‘사이다 식’ 답변을 해 대권주자 지지율 상승의 전환점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동훈 장관도 ‘이낙연의 국회 답변 점프 업’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혹시 한 장관이 의원들을 ‘말발’로 제압해 정치적으로 ‘승천’하려 한다면 그런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유독 한동훈 장관은 올바른 공직자의 상과는 멀게 만 느껴집니다. 저잣거리 장삼이사들이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질의라 할지라도 겸손하고 정성껏, 그리고 일관되게 정중한 자세로 답변하는 것이 공직자의 기본자세입니다. 적어도 공직자는 그렇게 하라고 국민들이 세금 내서 월급 주는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개인의 사사로운 ‘인기 부양’에 써서는 안 됩니다. 본질에 어긋난 말싸움 대답으로 일관하며 시간을 낭비해서도 안 됩니다. 공직에 있다는 것은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서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공직자’가 된 이상 국민들이 부여한 책임과 의무의 무게감을 느끼고 겸손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오늘은 야당 의원이 낸 퀴즈에 어떻게 대답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줄까’에 골몰하는 법무부 장관이 있는 한 정순신 변호사 인사 검증 실패같은 치명적인 과오는 되풀이될 것입니다. ‘편의점에 간 한동훈’이 ‘정중하게’ 물건 값을 계산하고 ‘겸손하게’ 나갔다는 패러디도 나오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