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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07. 2023

조수진의 ‘밥 한 공기’ 코미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4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119 임명장 수여식 및 제1차 회의에서 조수진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가 ‘봉숭아학당’을 닮아간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지리멸렬한 지도부를 보다 못한 홍준표 대구시장이 또 한 마디 했습니다. 홍 시장은 “(김기현 대표가) 엉터리로 왔다 갔다 하고 철학 없이 움직이니까 답답해서” 쓴 소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는데도 경고성 발언만 할 뿐 분위기 쇄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국민의힘 ‘봉숭아학당’의 압권은 ‘밥 한 공기 다 먹기’였습니다.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5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먹기 운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건 최초로 KBS에만 공개하는 것”이라며 뭔가 심오한 대책을 준비한 듯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이에 진행자도 솔깃해서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국민의힘 민생대책특별위원회 ‘민생119’ 위원장을 맡은 조수진 의원은 “민생119에서 나온 건, 지금 남아도는 쌀 문제는 굉장히 가슴 아픈 현실이라 ‘밥 한 공기 다 비우기’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조 의원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잠시 실소를 금치 못하던 진행자가 “한 공기 다 먹기? ‘두 공기 먹기’ 이런 거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이에 조 의원은 “여성분들 같은 경우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이 많은데 밥은 다른 식품들과 비교해서 오히려 칼로리가 낮다”며 다시 한번 진지하게 강조했습니다.


조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자 여야 할 것 없이 난리가 났습니다. 김기현 대표의 첫 반응은 “그게 무슨 대책이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겠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도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습니다. 조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뒤 네티즌들도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대책 없는 국민의힘을 조롱하며 비난했습니다.


김기현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이 여의도에 파견한 ‘출장소장’이라는 오명을 벗고 당의 정책 개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민생대책특별위원회인 ‘민생 119’를 야심차게 출범시켰습니다. 김 대표로서는 민생119위원회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수진 위원장이 ‘첫 작품’부터 사고를 제대로 치는 바람에 앞으로 나올 민생119 정책도 코미디 소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조수진 의원의 ‘밥 한 공기’ 발언에 대해 당 일각에서는 ‘실언’이라거나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별 것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 의원은 실언을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봉숭아학당’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한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조 의원의 공감 능력 부족입니다. 사실 조 의원이 주장한 ‘쌀 소비 촉진’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생119의 양곡관리법 종합 대책이 도출되기 위한 배경 설명 정도에 불과한 이슈입니다.


양곡관리법은 식탁이 풍성해지면서 생긴 식문화의 급격한 변화, 식량 안보, 농업 혁신 등의 아젠다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야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법안을 대통령이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여당이 앞장서서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적절한 대안을 도출해내야 하는 ‘협치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관계자들이 4월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 여론은 쌀값 안정과 농가 소득을 위해 찬성하는 의견이 60%(한국갤럽 4월 1주차 자료로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로 공급 과잉과 재정 부담 증가로 반대하는 의견(25%)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고집을 부린다면 국회를 책임진 집권여당 지도부가 용산과 민주당의 가교가 돼 협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법안 자체를 거부하게 되면 농가 지원 대책은 백지가 된다는 점에서 조수진 의원의 출발점은 ‘밥 한 공기’가 아니라 여야 협상을 통한 적절한 대안 수립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출장대원답게 ‘대통령이 거부했으니 너희들은 밥이나 더 먹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습니다.


농민과 국민들이 반대하는 이유에 전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오로지 ‘윤석열바라기’가 돼 어떻게 하면 ‘그분’ 기분을 맞춰줄 수 있을까 궁리하다 나온 답이 바로 ‘밥 한 공기’였던 것입니다. 조수진 의원뿐 아니라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전부가 이런 ‘유일신 숭배’ 경향을 보이고 있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조수진 의원이 제안한 ‘밥 한 공기 다 먹기’는 ‘국민들의 식습관을 뜯어 고치겠다’는 오만하고 무지몽매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조 의원뿐 아니라 김기현 대표 체제 하의 ‘간부’들은 국민을 오로지 계몽과 지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정점에는 ‘국무회의 23분 발언’의 윤석열 대통령이 있습니다.


사실 국민들은 조수진 의원의 발언을 두고 ‘실언할 수도 있다’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을 하는 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체제의 정책 개발 능력이 ‘밥 한 공기’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데 있습니다. 집권여당 대표가 야심차게 출범시켜 대책을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산업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초등학생 학예회 뽐내기 수준의 ‘재롱거리’로 비쳐집니다.


민생119라는 정체불명의 특별위원회도 무엇을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회의에서 도출한 ‘아이디어 수준’의 정책을 생방송 라디오에서 자랑스럽게 떠드는 조수진 의원의 말이 현재의 집권여당 정책개발 역량인 것입니다. 더욱이 이 위원회에서 만든 정책이 용산 대통령실의 높은 벽을 어떻게 넘어 실현 가능한 의제로 될 지도 불분명합니다. 김기현 대표 체제가 단독으로 정책을 개발할 능력도 떨어지지만 그런 난제를 ‘철옹성 용산’에게 설득하는 정무적 능력 또한 수준이하일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설’과 그에 따른 발뺌과 떠넘기기 악습이 이번에도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조수진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여야 정치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민생119 첫 회의에서) 밥 한 공기 먹기 캠페인, 쌀빵 쌀케이크 같은 가루쌀 제품 현장 찾기 등 회의에서 나온 몇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발언의 진의를 왜곡해 선전 선동을 벌이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발언이 왜곡돼 선전 선동에 이용된다는 주장입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왼쪽)이 지난 4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수진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조 의원은 한 기자의 질문에도 ‘언론의 악의적 보도’라며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정치인의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입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면 일단 언론 탓으로 돌립니다. 언론이 발언의 취지를 왜곡했다며 남 탓으로 돌립니다.


다음은 조수진 의원과 ‘악의적 보도’ 멘트를 받은 기자와의 대화입니다.


기자: 악의적 보도라고 보나?


조수진: 악의적 보도라기보다 ‘사실 관계를 잘 따져주십시오’라고 했다.


기자: 어제 전화했을 때는 악의적 보도라고 말했다.


조수진: 사실관계 제가 녹음해놨는데 들려드릴까요?


기자: 저도 있습니다.


조수진: 예, 예, 예


대화 녹음을 다시 들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실언’ 사태가 터지면 ‘일단 부인-언론 탓-뭉개기’ 수순으로 돌입합니다. 이번 조수진 의원의 ‘밥 한 공기’ 발언은 그 자체로 공감 능력 부재와 정책 개발 능력 부족을 말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후의 대응도 ‘거짓말’과 발뺌, 떠넘기기로 일관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집권여당 국민의힘 지도부의 ‘수준’입니다. 회의 시간에 몇 시간 얘기하고 나온 설익은 이야기를 대책이랍시고 라디오에서 자랑스럽게 떠듭니다. 비난이 쏟아지자 당 대표는 ‘그게 무슨 대책이 되겠느냐’며 궁색한 대답을 하며 어색한 자리를 모면하려 합니다.


그 후에도 발언 장본인은 ‘악의적’인 언론 보도 탓을 하며 빠져 나갈 궁리만 합니다. 앞으로도 국민의힘 ‘봉숭아학당’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런 코미디를 보면 좋아해야할지, 걱정해야할지 국민들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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