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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11. 2023

국민의힘 어른거리는 총선 패배 전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인 2021년 4월 2일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 서울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집니다. 딱 1년 남았습니다. 정치권은 서서히 총선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총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통령제 5년 단임제와 총선 4년 주기 선거가 맞물리면서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유난히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이후 치러진 9번의 총선을 보면 대통령이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패배해 여소야대가 됐던 적은 5번,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이겼던 여대야소 결과는 4번 있었습니다.


여당 승리인 여대야소 모델을 한번 보겠습니다. 직선제 개헌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총선에 패배하며 여소야대의 어려운 정국을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직선제 이후 총선 결과로만 놓고 봤을 때 현직 대통령으로 총선에서 이긴 첫 번째 여대야소 주인공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비주류’ 출신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상황이 좋지 못했습니다. 집권 초반부터 대통령 측근 비리와 대북 송금 특검 등으로 어렵게 출발한 노무현 정권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최대의 분열을 맞게 됩니다. 선거 예상은 지극히 불투명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 역풍’이라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17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세력이 결탁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해버렸지만 민심의 거대한 저항으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하는 ‘대 사변’이 일어났습니다. 한나라당은 121석, 민주당은 9석, 자민련은 4석에 그치는 사상 첫 여대야소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한국 선거는 통상 ‘인물․구도․바람’의 3요소가 지배합니다. 이런 점에서 2004년 17대 총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바람’이 선거판을 결정적으로 흔들었습니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들이 ‘바람’을 타고 총선에서 이긴 사례는 2차례 더 있었습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기세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CEO 출신 대통령 몰아주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153석).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와 1년 차에 각각 여대야소 승리를 거뒀습니다. 대통령의 힘이 그래도 많이 남아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에 총선을 치러 승리를 거뒀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지만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안겨다 주었습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왼쪽) 등이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 개표방송을 시청하던 중 출구조사 결과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정당은 풍비박산이 났고 그 후유증이 집권 4년 차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사이익 승리’를 안겨다 주었던 것입니다. 특히 전례 없는 코로나19 사태로 대통령과 집권당에게 힘을 몰아줘 대혼란을 잘 수습하라는 ‘국가 위기 탈출 바람’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바람의 공식’을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일단 집권 3년 차를 맞는 윤 대통령은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앞서의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와 1년 차일 때 총선을 치렀습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국민들이 인내를 가지고 국정운영을 지켜보는 시간입니다. 대통령이 웬만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기회를 더 주는 포용과 인내의 민심이 지배합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는 국민들의 인내심이 시험대에 들 시간입니다. 말없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켜보던 민심이 나름의 계산을 끝내고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간상으로 집권 초반 총선 승리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탄핵’이나 ‘CEO 대통령 기대감’ 같은 바람이 윤 대통령에게는 어떤 형태로 불게 될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아직 1년이나 남은 상황이라 선거 직전 어떤 초강력 태풍이 정치판을 지배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현재의 정치 지형을 놓고 보면 내년 총선 직전에 ‘대통령 탄핵, CEO 대통령 기대감, 코로나19’ 같은 초강력 장외 바람이 불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단 대통령 탄핵은 불가능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CEO 출신 프리미엄(비록 신기루로 판명 났지만)을 윤 대통령이 가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검사의 나라’ 우두머리로 점점 낙인찍혀 갑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이 다시 발생해 현직 대통령을 밀어주자는 가능성도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에 ‘로또’ 승리한 것만큼의 확률이 다시 필요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을 도와줄 가장 현실적인 ‘극강의 바람’은 북한 변수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안보 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경우 코로나19 때의 ‘국가 위기 탈출’ 바람이 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 위기를 극복해나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정도의 충격파면 상당히 심각한 북한발 안보 위기가 발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북한이 제 발로 ‘북풍’을 만들어주는 우를 범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역대 대통령이 총선에서 이긴 여대야소 중 유일하게 ‘인물’로 승리한 선거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5년 차 재임 때였던 2012년 19대 총선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실시된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선거 폭망까지 예상됐으나 ‘미래 권력’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으로 앉혀 선거를 지휘하면서 152석을 차지하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2020년 4월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21대 총선 선거상황실에서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여대야소 승리는 바로 박근혜라는 ‘인물’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이 모델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일단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강력하게 휘어잡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차기 대권주자를 발굴해 내세울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중 차기 주자 발굴과 양성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자생력을 갖춘 주자가 아닌 이상 굳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 또한 강력한 차기 주자를 내세워 인물론으로 총선에 임한다면 그 자체로 권력을 미래 주자에게 넘겨주는 꼴이기 때문에 대통령 권력 생리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윤석열 인물론’으로 돌파할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대표를 내세운 것도 ‘윤석열’ 본인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습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30%대를 헤매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인물론’이 먹혀들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치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내년 총선 즈음해서는 국정운영 지지율이 40%대 이상을 지속해 찍어야 그나마 ‘윤석열 인물론’이 작동할 판이 깔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 불통 스타일이나 용산의 정국 운영 정무 역량 등을 고려해볼 때 내년 총선  즈음해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이상을 찍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의 여대야소 승리 공식에 견줄 만한 특장점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다 현재의 정국 상황도 집권당에 상당히 불리합니다. 지난 4․5 재보선에 김기현 대표는 자신이 4선을 하고 시장까지 지낸 울산에서도 패배했습니다.


특히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 36%보다 훨씬 높았습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집권 3년 차를 맞는 윤 대통령에게 내년 총선이 ‘정권 심판론’으로 나타날 경우 국민의힘 선거 폭망의 전조가 보이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관리를 포기하고 ‘우리 편’만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려고 한다는 시그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과 민주당과의 협치 포기라는 강경 비타협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아예 과반 승리는 포기하고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앞세워 최대한 비근하게 이기거나 지는 ‘박빙의 의석수 차이’ 전략을 고수한다면 현재의 ‘불통 강경 대치’ 정국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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