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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12. 2023

미국 도·감청 의혹 미스터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여당은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반면 야당은 동맹 신뢰를 깬 주권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도·감청 대상 당사자인 대통령실은 사건 초반 “사실 관계 파악이 가장 우선”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 11일에는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 운용 중에 있다”며 철통 보안을 강조했다. 또한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해 도·감청 방어 시스템이 허술해졌다는 야당 공세와 관련해 “자해행위이자 국익침해 행위”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사실 강대국 정보기관의 타국 도·감청은 동맹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당연한’ 정보활동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그동안 한국 정부도 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중”이라며 ‘시간 끌기 작전’으로 일관해온 게 사실이다. 절대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철저한 조사는 물론이고 팩트 확인조차 소홀히 하며 사건의 여파가 뭉개지기만을 기다렸던 게 지금까지의 대응 ‘관행’이었다.


이번에도 대통령실의 초반 대응은 ‘팩트 확인’이라며 신중한 입장이었고 그 후 미국으로 출국하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양국의 국방장관이 서로 통화한 이후 유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된 것이라는 평가에 일치했다”라며 미국의 도.감청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나섰다. 미국의 도·감청 의혹 문제는 유출된 정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양국 정부가 공식 부인하면 물밑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감청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국회 등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향후 ‘대통령실 보안’ 문제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야권에서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보안 취약 등에 대한 우려에도 ‘용산 대통령 시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번 같은 ‘대형 보안사고’가 터졌다는 주장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외교통일위·정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졸속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실을 정부 출범일에 맞춘답시고 국방부를 대통령실로 급히 꾸리려다 보니, 보안을 강화하는 벽면 공사 등을 새롭게 하지 못했고 보안 조치 공사나 리모델링 등도 짧은 기간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급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10일 인터뷰에서 “(대통령실) 창문은 도·감청 필름을 붙여 (도·감청 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벽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모든 선과 장비에 도·감청 장치들이 묻어 들어갔을 수 있다. 일체 다 점검하고 보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이에 대해 “통신 케이블에 접근했거나 무선 센서로 건물, 유리창, 환풍기 등을 통해 (도청)할 수 있고 사이버 침투를 통해서도 도청할 수 있는데,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건물 자체 보안성을 모두 검토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전 의원은 대통령실이 용산 미군기지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점 자체가 크나큰 ‘보안 리스크’라고 강조했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에는 미국의 도청, 감청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정보분석센터가 위치해 있다. 전 세계적인 전자 감시 시스템과 신경망이 쭉 뻗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미군기지 옆에 가는 건 위험천만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건물(오른쪽)과 국방부 합참 청사 전경.


야권의 이런 주장에 대해 대통령실은 펄쩍 뛰면서 부인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나오는 야당의 주장들은 팩트와 먼 것들이 너무 많다”며 야권의 주장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0일 “청사 보안 문제는 이전할 때부터 완벽히 준비했고,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던 것으로 파악된다. 청와대 시절 벙커는 지상으로 돌출돼 있어, 보안이나 안전은 오히려 여기가 더 안전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안이라든지 안전이라든지 이런 부분은 청와대보다 용산이 훨씬 더 탄탄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부 때 국방부·합참이었다. 민주당의 주장은 자기네들도 뚫렸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이라고 오히려 역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문재인-박근혜 정권에서는 미국이 도·감청을 비밀리에 했다고 해도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3년 7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졌는데, 당시 표적은 주미한국대사관이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실이 뚫렸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하필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급하게’ 이전한 뒤 미국의 도.감청 정보가 공개가 돼 파문이 커졌다는 것은 ‘오비이락’으로 넘기기에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에 보안상 문제점이 있었을 개연성은 있다.


특히 야권에서는 “용산 대통령실의 허술한 보안 관리로 문재인 박근혜 정권 때보다 더 많은 량의 도.감청 정보가 유출돼 돌아다니다 보니 유출의 가능성이 이전 정권 때보다 커졌고 결국 이번에 몇 개가 공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기는 어수선한 과정에서 일종의 ‘보안 공백기’가 있었고 이때 도·감청 시설이 설치돼 대통령실이 탈탈 털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유출 정보들이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급하게 옮기기보다 새로운 시설의 보안문제 등이 완벽해질 때까지 청와대에서 임시로 집무하라’는 조언을 받기도 했지만 ‘청와대에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공언한 말을 끝까지 지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로 ‘급하게’ 옮겨야만 했던 또 다른 배경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집무실 용산 이전을 ‘보안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평소 386 주사파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문재인 정권 사람들을 상당히 불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에 386 출신 인사들이 많이 근무하면서 보안이 이전보다 더 취약해졌고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가 공유한 기밀정보가 북한으로 곧바로 유출되는 정황을 포착한 미국 측이 한국 측에 추가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을 접한 윤 대통령은 아예 새로운 시설로 집무실을 옮겨 기존 청와대 도·감청 장비들을 무력화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 용산으로 집무실을 무리해서 옮겼는데 하필 그곳이 세계 최고의 정보수집능력을 갖춘 미군부대 바로 옆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 각국의 도·감청을 비롯한 정보전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 정보기관 또한 남북 대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당히 조직적인 인간정보(HUMINT)망을 확보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국정원 책임론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우리의 ‘정보 자산 능력’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유야무야 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로 집무실을 이전한 이후 미국의 도·감청 의혹이 불거졌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실은 청와대 벙커는 일부가 밖으로 드러나 있지만 용산은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것이라며 보안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용산 대통령실 공사기간 동안 ‘보안 공백기’가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보안은 1초만 공백이 생겨도 정보 100%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점검이 필요하다. 알 사람만 알아야 하는 게 보안의 첫 번째 원칙이다. 이번 사건을 시시콜콜히 까발려 국가 정보보안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것도 민망하지만 윤석열 정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한 시선만은 거둬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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