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들어 부쩍 친정인 국민의힘에 ‘감 놔라 배 놔라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홍 시장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정치판을 떠나지 않고 대구로 ‘하방’해 재기를 모색중입니다. 그는 당의 상임고문으로 위촉된 자신의 지위를 십분 발휘해 장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호위무사’ 역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김재원 최고위원과 전광훈 목사의 행태를 비판하거나 김기현 대표에게도 훈수를 두는 등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탈도 많아지는 법이죠. 홍 시장은 최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생방송으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다 진행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출마’에 관한 의견을 몇 차례 묻자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진행자가 당황해 ‘나중에 사과 전화를 하실 것’이라고 어색한 상황을 정리하긴 했지만 생방송 도중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중단하는 것은 방송사고 가운데 가장 중대한 ‘NG’입니다.
홍 시장이 ‘불뚝 성질’을 참지 못하고 발끈한 것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거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홍 시장은 처음에는 “나는 의견 없다”며 답변을 비켜가려 했으나 사회자가 재차 “의견이 없으시냐?”고 되물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의 간의 ‘공방’이 잠시 이어지자 진행자는 “한 장관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며 한 장관 관련 질문을 마무리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홍 시장은 대뜸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이 전화 끊읍시다. 이상하게 말을 돌려가지고 아침부터 그렇게 한다”고 불쾌함을 드러냈습니다. 진행자가 “죄송하다”고 했지만, 홍 시장은 “전화 끊습니다”라고 말한 뒤 실제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홍 시장은 평소에도 직설적이고 다혈질인 성격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곤 합니다. 필자는 과거 홍 시장과 인터뷰를 할 때 마치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숙제검사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질문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불순함’이 엿보인다면 정색을 하고 그런 것은 묻지 말라는 투로, 노골적으로 역정을 내곤 합니다.
아마 지금도 홍 시장은 기자들에게 ‘불친절한 정치인’으로 익히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한데 홍 시장의 이런 ‘공격적인 태도’는 자신만이 가진 교묘한 빠져나가기 노하우이기도 합니다. 질문해서 구설수(그는 김현정 인터뷰에서 이를 ‘설화’라고 표현했다)가 될 만한 질문은 기자에게 역공을 가해서 빠져나가는 식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기자는 다음부터 홍 시장이 역정을 낼만한 질문을 ‘가려서’ 하는 자기검열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닫고 나올 때 미련이 남거나 오랫동안 찝찝한 상태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이 바로 홍준표 시장입니다. 물론 기자의 인터뷰 기술이 모자라서일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정치 8단’쯤 되는 홍 시장이 나름대로 여의도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술’이라고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아침 프라임시간대에 청취율이 높은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도중에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것은 홍준표의 단순한 생존방식을 넘어서는 비상식적인 행위입니다.
홍 시장의 무례한 행위를 보면 평소 국민들의 기분이나 감정은 깡그리 무시하는, 오만하고 무례한 ‘꼰대 정치인’의 천박함만이 번득거립니다.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고 권력자의 우월적 지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합니다. ‘감히 내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혼자 분노하다가 결국 청취자와의 약속도 발로 차버리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국민들 중에는 그렇지 않아도 ‘검사 정권’으로 오해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 2의 윤석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총선무대에 세워 또 다시 타협과 협치의 정치판을 ‘오염’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대권주자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한동훈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는 정가의 핫이슈이자 ‘난장판 정치’를 바라지 않는 국민들의 우려와 염려가 담긴 민감한 이슈이기도 합니다.
물론 새카만 검사 후배들에게 이리 치이고(대선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에 패배) 또 저리 치일(한동훈과의 차기 대권 경쟁) 처지에 놓인 홍준표의 ‘공포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잘 들어보면 진행자가 한 장관 출마를 의도적으로 계속 물어보며 홍 시장을 곤란하게 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홍 시장이 질문의 의도를 ‘피해 망상적’으로 해석해 자신의 ‘사심’을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 방송 이후 홍 시장은 생방송 중단 인터뷰가 문제가 되자 페이스북에 “내가 마치 한 장관을 시기하는 듯한 무례한 질문을 하기에 도중에 인터뷰를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인할지 모르지만 듣는 국민들은 ‘홍준표가 한동훈을 정말 의식하는구나. 정치 경력으로 보면 홍 시장 발아래 있을 법한 한 장관에게 엄청난 질투와 콤플렉스를 느껴 인터뷰를 중단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법합니다.
사실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새카만 후배’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찾아가 어깨를 치며 ‘살살 하라’는 식으로 대한 것에 홍 시장은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이(1954년생)로 치면 아들뻘인 한동훈 장관(1973년생)과도 비교가 되고 또한 현재의 여론조사에서도 한참 밀리는 형국이니 어지간히 한 장관이 밉게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홍 시장에게 ‘한동훈’은 금기어 중의 금기어겠죠.
하지만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인터뷰 중에 자신의 감정을 ‘우악스럽게’ 드러내며 진행 자체를 ‘파괴’시킨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공인으로서의 품격과 절제를 유지하며 화를 짓누르는 것은 인내력 테스트가 아니라 공적인 지위에 있는 ‘높은 분’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경외의 형식적 표현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홍 시장은 공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나 배려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입으로만 국민을 외칠 뿐 정작 그들이 기분 상할 만한 무례한 행위를 서스럼 없이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입니다.
홍 시장은 대구 ‘시민’들에게도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 시장은 최근 문화예술허브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 ‘대구 지역 무시’ 뒷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잦은 ‘중앙 정치 개입’에 대해 “대구를 ‘용산’으로 가기 위한 정거장 정도로 생각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홍 시장은 지난해 7월 5일 취임 후 처음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중간에 끊거나 무안과 면박을 주는 등 불미스런 언행으로 일관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지역정가에서는 "지방 기자들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서울 중앙일간지 기자들이었으면 그렇게 무시하며 고압적으로 대했을까"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자 얼굴입니다. 권력을 가진 그들의 언행은 국민들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홍준표 시장같이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침 라디오 진행자와의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을 보는 정치인 아래의 ‘사장님’ ‘대표님’들은 ‘정치인들도 저렇게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지’라는 심리적 안도감이나 권력자들만의 연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홍 시장은 인터뷰 중단에 대해 기자들이 계속 질문을 하자 최근에는 “인터뷰를 하는데 원하는 답변 계속 들으려고 요리돌리고 조리돌려서 질문하는 건 인터뷰가 아니라 경찰이나 검사가 수사할 때 하는 심문”이라며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못된 버릇”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자는 묻고 정치인은 답하는, 그런 기본적인 약속마저 지키지 못하고 언론인(국민)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으려는 ‘꼰대 정치인’은 이제는 정말로 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