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난데없는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이 불붙고 있다. 최근 민주당 이정근(61) 전 사무부총장은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12일 이 전 부총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징역 1년 6개월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나머지 혐의에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이 전 부총장에게서 9억8000여만원을 추징하고, 이 전 부총장에게서 압수한 각종 명품을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이 징역 3년형을 구형했지만 ‘죄질’이 극히 불량해 더 중한 선고를 내리는 이례적 판결을 했다. 이 전 부총장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해 돈을 받은 정황이라든지 대가성이 명백한 청탁성 뇌물이 오간 점이 재판부가 형을 더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이정근 전 부총장 개인의 단순한 정치자금 로비가 아니라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확산되면서 민주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재 검찰은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한 불법 정치자금이 모집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지난 4월 12일 윤관석 민주당 의원의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2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검찰이 구체적 ‘팩트’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압수수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된 점을 보면 앞으로 윤 의원뿐 아니라 추가 ‘피의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검찰은 민주당 이성만 의원 역시 같은 혐의로 주거지와 지역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해 당 안팎에서는 “수사의 범위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관석 의원의 경우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정근 전 부총장을 통해 강래구 전 한국감사협회장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강 전 협회장이 건넨 구체적 자금 금액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검찰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윤관석 의원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측근이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5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뒤 지난해 3월까지 당 대표를 맡았다. 윤 의원은 2021년 5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았다. 사무총장은 대표의 최측근이자 당의 핵심 요직이다. 송영길 전 대표 재임시와 윤 의원의 사무총장 재직이 겹치는 것이 이번 사건의 주요 포인트다.
당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의 자금이 송 전 대표 선거를 위해 사용된 정황이 포착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단순히 한 ‘당직자’의 개인 비리를 넘어 당 전체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정근 전 부총장의 녹음 파일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정근의 휴대전화’가 민주당 전체를 ‘지옥’으로 몰고 갈 ‘판도라의 상자’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휴대전화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부총장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의 자동 통화 녹음 기능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 전 부총장 휴대폰에는 수년간 쌓인 통화 녹음 파일이 있었는데, 검찰이 그 중 일부를 추출한 것만 따져도 3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검찰은 녹음 파일 외에도 문자 메시지와 카카오톡·텔레그램 등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 내역 또한 확보한 상황이다.
해당 녹음 파일에는 강래구 전 협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윤)관석이 형이 ‘의원들에게 (돈을) 좀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전 부총장이 강 전 협회장에게 “윤 의원을 오늘 만나서 (돈 봉투를) 전달했다”고 얘기하는 내용과, 윤 의원과 이 전 부총장이 현역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추가로 건네는 것을 논의하는 내용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해당 휴대 전화는 이 전 부총장이 사업가 박아무개씨로부터 청탁 대가로 10억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다른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한 것이라고 한다. 검찰은 지난해 8월 이 전 부총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휴대전화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전 부총장은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휴대전화는 2개월 뒤 이 전 부총장의 모친 자택에서 발견돼 이번 사건의 결정적 ‘트리거’가 되고 있다.
검찰은 녹음 파일에 나오는 ‘돈 봉투’ 외에도 다양한 금품 전달 경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전달된 현금의 출처와 행방, 규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사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런 녹음 파일에 얽힌 정황을 볼 때 이 전 부총장의 개인 불법 자금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퍼졌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검찰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의 당사자인 윤관석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이정근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보도에 언급된 인물들 이야기에 본인이 거론됐다는 것조차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이정근 전 부총장이 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성토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가 결정적으로 ‘털리는’ 바람에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단순히 전당대회 건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불법 자금 문제가 불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송영길 전 대표 선에서 정리되고 있지만 ‘이정근 블랙홀’이 어디까지 빨아들일지 당에서도 노심초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