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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Apr 18. 2023

‘돈 봉투’에 갇혀버린 이재명의 딜레마

이재명 대표가 4월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돈 봉투’ 사건을 접한 국민은 “아직도 정치인들이 돈을 받는 거냐”며 믿지 못하는 반응들이었습니다. 특히 정치인의 검은돈은 한때 보수정당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에게 무차별로 현금이 살포되었다는 뉴스는 충격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돈 봉투’는 따지고 보면 지난 2002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16대 대선 도중 당이 완전히 초토화된 ‘차떼기 사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불법 자금’은 한번 손댄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대선에서도 패배했지만 그 후 2008년 전당대회 때 불법 자금 ‘돈 봉투’ 문제가 다시 터졌습니다. 


2012년 고승덕 전 의원의 ‘돌발적인’ 폭로로 불법 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돼 전당대회 직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1억9000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이 밝혀져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그 후 15년 만에 우리 정치에 다시 돈 봉투 사건이 터졌습니다. 정치발전은커녕 과거의 ‘금권 정치’ 관행이 아직도 뿌리 깊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더 충격적입니다. 


이번 민주당 ‘돈 봉투 사건’에서 검찰이 지금까지 밝혀낸 불법 자금의 액수는 9400만원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돈은 윤관석, 이성만 의원 등 당시 송영길 당 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현역 의원과 대의원 등에게 살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송영길 전 대표의 측근이었던 윤관석 의원이 이정근 전 부총장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에게 ‘의원들에게 추가로 나눠줄 현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다만 6000만원에 달하는 봉투 20개를 수수한 의원들이 누구인지는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윤관석 의원의 요청으로 강 회장이 준비한 돈 봉투 개수가 20개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명, 많게는 20명의 민주당 의원이 한꺼번에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검찰이 돈을 전달받은 민주당 국회의원의 수를 20명으로 특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최대 20여 명의 현역 의원이 돈 봉투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음에도 민주당은 이번 사건 초기부터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13일 의총을 마치고 나온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검찰 수사가) 국면 전환용 기획 수사란 국민의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일 외교, 여권 지도부의 막말 등으로 여권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나왔다는 게 상당히 의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민주당의 초기 반응은 돈 봉투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완전히 실패한 대응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검찰 독재 정권의 야당 탄압’으로 몰아가며 방어 전선을 구축했고 검찰이 이 대표의 직접적인 ‘수뢰’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점을 파고들어 ‘정치 기획 수사’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해 9월30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돈 봉투 사건은 이정근 전 부총장의 3만여 건에 달하는 휴대전화 녹음기록과 돈을 건넨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검찰의 무리한 야당 탄압’으로 몰아가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자신들의 비리 혐의가 나올 때마다 ‘야당 탄압’이라며 ‘물타기’를 하는 ‘기계적인 남탓’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비리마저도 ‘검찰 탓’을 한다면 지금까지 민주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싸우고 있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는 “사건 실체 확인이 좀 더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자체 진상 조사’로 턴을 했고 급기야 이재명 대표가 직접 사과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총선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초대형 악재”라는 불만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당 지도부도 대응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민주당이 이렇게 ‘검찰 기획 수사-자체 진상 조사’ 등으로 갈팡질팡 대응을 하게 되면서 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위기관리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일단 그에 대해 신속하고 명확한 대응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무책임한 행보를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진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서 객관적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검찰의 행태가 일상이기 때문에 저는 잘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압수수색에 담긴 민주당 의원의 비리 가능성에 대한 진솔한 대응보다 ‘검찰 행태’를 먼저 거론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송영길 전 대표가 자진해서 조사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당 의원 10명 이상이 관련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 등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날 ‘검찰 행태’라는 공세적 반응을 거두고 침묵 모드로 들어간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이슈 대응에는 일관성이 없고 여론 추이에 따라 상황 논리로 돌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가 이렇게 사건 초기에 선제적이고 명확한 대응을 ‘과감하게’ 하지 못하는 데에는 ‘사법 리스크’가 자기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금권정치에 연루된 사실만으로도 반성의 자세를 먼저 보이고, 검찰 수사에 거론된 현역의원들에 대한 과감한 징계 의지를 언급하는 등 ‘부패와의 절연’을 먼저 외쳤어야 했습니다. 


이재명 당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가 지난해 5월 14일 6.1 지방선거 사무소 개소식에서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손을 맞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이 대표가 당의 ‘돈 봉투’ 부정부패 의혹을 순순히 시인하고 바짝 엎드릴 경우 지금까지 ‘검찰의 정치 탄압 수사에 맞서 당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 대응 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려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뻔히 돈 받은 정황이 녹음파일 등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검찰 기획 수사’로 밀어붙일 경우 ‘비리의 저수지’ 정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재명 대표는 사건 초기 자신의 사법 리스크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돈 봉투라는 구체적 팩트가 드러나는 부패사건마저도 ‘정치적으로’ 뭉개려 하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셈입니다. 자신이 쳐 놓은 ‘사법 리스크’의 강고한 덫에 자신이 걸려든 형국입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이번 사건을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17일 직접 사과했지만 사태 수습의 수순이 잘못됐고 초기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번 돈 봉투 사건으로 국민의힘과 비교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여겨져 온 민주당의 ‘청렴’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이후 180석이라는 환상에 빠져 기득권의 관성이 더욱 강해졌고 이번 사건의 초기 대응도 ‘검찰 탓’으로 비껴가려 하면서 그들만의 특권의식과 권력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직을 걸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번 돈 봉투 사건입니다. 다시는 정치판에 추잡한 돈 봉투가 오가지 않게 당의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전면적으로 쇄신하고 금품 수수 연루자는 모두 강력한 징계와 처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나락에 빠진 민주당을 살릴 사람은 이재명 대표 외에는 없습니다. 이 대표가 돈 봉투 사건을 ‘정치적으로’ 대응한다면 사그라들던 자신의 ‘사법 리스크’마저 재 점화하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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