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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기노 May 30. 2023

이재명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7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서울 조계사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각 당 대표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이날의 최대 관심사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조우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무미건조한 악수만 나누었을 뿐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식에서도 이재명 대표와 인사를 나눴지만 일체의 대화나 가벼운 스킨십도 없이 쌩 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계제는 물론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휘말려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만남을 거절하고 있어 더욱 공개적인 ‘조우’에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그마한 억측이라도 나오지 않게 하려는 윤 대통령의 조심스러운 행보가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3.1절과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이 보여준 이재명 대표에 대한 ‘투명 인간’ 취급은 그 어떤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더라도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은 최악의 한 장면이었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정치 이슈를 다뤄왔지만 이날처럼 정치인의 어색하고 안쓰러운 조우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순수하고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윤 대통령의 싸늘한 악수에서 여러 가지 범법 행위에 연루된 이재명 대표를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 ‘반드시 잡아넣어야 할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피의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아무리 야당 대표가 밉게 보인다고 해도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의 모든 시선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쏠리는 공식 행사에서 굳이 야멸차게 야당 대표를 대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전쟁 중에도 적과 휴전 협상을 하고 싸움에서 패한 적장에게도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예우를 해줍니다. 이런 최소한의 존중은 그 전쟁이 갖는 야만성과 폭압성을 인간의 이성으로 되돌리는 최소한의 윤리적 여과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싸늘하게 무시하고 돌아선 것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들에게도 등을 돌리는,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는 최악의 정치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참석자들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로 감싸 안고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야당 대표가 그 자리에서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지 않게 최소한의 안부 인사 정도와 배려는 해줘도, 그 후에 그 어떤 억측이나 오해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아집’은 국민들에게 익히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국가 공식 행사에서 두 번이나 연속으로 야당 대표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철저히 무시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여야의 정치는 타협과 이성의 영역을 넘어 증오와 감정싸움의 무한 전장터로 완전히 옮겨간 것 같습니다. 이제 야당은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철저하게 무시당한 모멸감에 몸서리를 치며 더욱 악다구니 정치로 복수하려 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국회 상임위원장단 회동도 무산돼 여야 정치는 더욱 암흑이 지배하게 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의 만남 제의를 수차례 거절하며 철저하게 담을 쌓고 있습니다. 공개석상에서도 냉랭한 장면을 연출하며 야당 대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윤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임에도 단 한 순간도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기 싫어하는 일종의 ‘이재명 혐오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윤석열이 이재명을 증오하고 혐오한다’는 메시지를 지속해 던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와 TV토론회를 할 때 대장동 사건의 ‘몸통’으로 자신을 지목하는 이 대표의 ‘뻔뻔함’을 경험하고 난 이후 ‘대화가 안 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절대로 말을 섞지 않겠다는 뒤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순수하고 고지식한 편인 윤 대통령이 한번 실망한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가까이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개인의 인성’이 여야 정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개인의 사감을 앞세우며 정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데 따른 국익의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할 때 민주당이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시정 연설을 보이콧한 것에 대한 개인적 앙금이 강하게 남아 이재명 대표도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야당이 먼저 여야 상생의 금도를 깼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야당이 더욱 자신을 무시하고 길들이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 야당 대표를 야멸차게 대하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기념해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이 공개됐다. 사진은 신문을 읽는 윤 대통령. (사진제공=대통령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략을 통해 야당의 분노와 증오, 저항을 더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노골적으로 유발시켜 ‘독재’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전략과 유사합니다. 윤 대통령도 철저한 민주당 무시 전략을 통해 거대 야당이 ‘대통령 물어뜯기’에만 골몰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자신을 ‘동급’으로 놓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흔히 쓰던 수법입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일개’ 야당 대표와 동일한 지위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기본적으로 ‘영수 회담’이라는 단어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정당과 진영의 논리를 초월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수 회담을 하게 되면 야당 대표의 ‘대권주자 지위’를 공고히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굳이 야당 들러리를 서줄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단독 영수 회담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홍준표 대표가 예뻐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국가 통합 의무를 이행한 행위일 뿐입니다.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정치를 분노와 증오의 난장판으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짊어진 가장 큰 짐은 국가의 통합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아무리 밉더라도 공식 행사에서 야당 대표로서 예우를 해주는 것은 그가 어여뻐서가 아니라 그를 지지해 준 ‘반쪽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배려입니다. 


대통령실은 5월 27일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집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을 발간했다고 밝혔습니다. 근엄하면서도 소탈해 ‘보이려는’ 대통령의 사진 115장이 빼곡히 실려 있습니다. 이를 본 국민들이 얼마나 감동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최고 권력자가 연출했던 어색하고 불편한 장면은 국민들을 우울하게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소한의 정치 품격만은 지키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자랑하지’ 말고 국민들이 진정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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