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이 사흘간의 일정을 종료하고 마무리됐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간의 설전이 잠시 화제가 됐을 뿐 한미 관세 논란이나 부동산·민생 공방도 기존 입장 재확인 수준에 그치면서 “이렇다 할 주목거리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대정부질문은 정책 검증보다는 여야 간 감정싸움의 대결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야당 의원들은 몇 분 주어진 소중한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존재감을 부각하는 데 열중한다. 보좌관들이 점잖은 질문지를 써내면 의원은 더 매운맛을 요구하기도 한다.
평소 언론에 잘 나타나지 못하는 야당 의원들은 대정부 질문이 더욱 소중한 시간이다. 단번에 스타로 등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정부 고위인사들을 따끔하게 질책하고 훈계하고 빈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국민들도 있다.
한편 공격을 받는 총리나 장관들은 야당의 송곳질문을 두루뭉수리 넘어가며 약점 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총리와 장관들의 답변 태도가 변했다. 질문자가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꼬투리를 잡아 추궁하는 ‘덫’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고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역공을 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돼 버렸다.
그런 강대강 전략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정치인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정권 저격수였던 홍준표 전 의원도 이 전 총리 앞에서는 말꼬리를 흐릴 정도였다. 그 후 이낙연 전 총리도 간결하고 논리적인 말솜씨로 단박에 대권주자로까지 등극하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사실 대정부 질문을 준비하는 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 때처럼 일종의 매뉴얼이 있다. ‘총리나 장관에게 답변할 시간을 주지 말고 계속 말을 끊어 당황하게 만들어라’ ‘직선적이고 자극적인 질문으로 답변자를 흥분하게 해서 말실수를 유도하라’는 등의 지침이 있다. 국회 주변에는 의원들과 보좌관이 공유하는 일종의 ‘대정부 질문 족보’도 나돈다.
그런데 요즘 국회 대정부 질문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야당의 질문이 정말 수준 이하이거나 준비가 덜 됐거나 현안의 핵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부의 답변 태도 또한 공직자로서의 품격과 자세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
얼마 전 대정부질문 때 김민석 총리와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사이 설전이 있었다. 탈북민 출신인 박충권 의원의 질의는 팩트에 근거했다기보다 세간의 소문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김 총리에게 ‘軍이 김정은 심기 보좌’라는 등 확인 불가한 억측을 가지고 몰아세우려 하다가 오히려 ‘얻다 대고’ 소리를 들으며 질책을 받았다.
1차 분노유발자는 박충권 의원이었다. 국회에서 과거 선배들이나 동료가 하던 못된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다가 총리의 분노를 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다면 그 진가가 드러났겠지만 대개 그렇게 점잖게 질의하면 언론에 한 줄도 보도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무리수를 계속 두다가 결국 신뢰를 잃었다.
이 설전이 도하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박 의원의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박 의원이 소중한 시간에 시중 저잣거리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대정부질문 때 썼다는 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김민석 총리에게도 있다. 국민의힘이 아무리 내란 프레임에 갇혀 있고, 전략도 엉성하고, 말도 안 되는 질의를 한다 해도 총리가 “얻다 대고” 식으로 나오면 정부 여당을 ‘수준 낮은’ 야당과 동급으로 만드는 격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질문에 품격 있게 답변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공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이 문제 많다고 해서 총리가 그들을 훈계할 권한을 얻는 것은 아니다. 무능한 야당은 선거에서 심판하면 된다. 야당을 경멸하는 태도는 권력의 품격을 갉아먹는다. 여당 지지층에게는 김 총리의 답변이 시원하겠지만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공직자 김민석 총리에게는 반쪽짜리 국정운영일 수도 있다.
며칠 전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업무 협조를 얻기 위해 국회 본관에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를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안 장관은 송 원내대표가 화장실에서 나온 뒤에도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국가 중대사’를 부탁했지만 송 원내대표는 쳐다보지도 않고 사라져버렸다.
국회에서 야당을 무시하고 싸우던 장관도 예산과 안보 사안이 걸린 순간에는 협조를 구해야 하는 게 정치의 현실이다. 국회에서의 언어는 퍼포먼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산과 안보는 퍼포먼스로 해결되지 않는다. 야당은 무책임하게 떼를 쓸 수도 있겠지만 집권여당과 정부는 오로지 국리민복만 생각해야 한다.
통치의 힘은 고성과 고압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절제와 존중이 권위를 세운다. 야당의 수준이 낮을수록 정부의 태도는 더 겸손하고 품격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이재명 정부의 진짜 실력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26년 2월 13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