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한 조각.

첫 번째 이야기

by 안분지족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 눈발이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가은은 두 손을 두꺼운 롱패딩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줄을 서 있었다. 친구들은 셀카 찍느라 바빴고, 선생님은 입장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얘들아, 여긴 그냥 박물관이 아니야.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갇혀 있던 감옥이라고. ”


가은은 눈을 굴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게 왜 우리랑 상관 있는 건데….’


전시관 안은 차가웠다. 붉은 벽돌, 철창문, 검게 바랜 사진들.


처형장을 재현한 방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방은 실제 사형이 집행되던 곳이야. 마지막으로 가족과 눈을 맞춘 장소기도 하고.”


가은은 순간 눈이 마주친 듯한 인물 사진 앞에서 멈췄다.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표정은 담담했고, 눈동자는 흐리지 않았다.


"이 사람도… 나보다 어렸을지도 몰라."


그녀는 한쪽 벽면에 유리관 속에 놓인 낡은 태극기 조각 앞에서 발을 멈췄다. 설명문에는 이름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태극기 조각. 1925년 경성.’


눈을 떼려는데, 무언가 마음이 끌렸다. 그 조각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가은은 유리 너머로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퍽.’


머릿속을 내려치는 듯한 충격. 눈부신 섬광.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공기는 축축했고, 발밑은 흙바닥이었다. 주변은 낮은 건물과 한자 간판으로 가득했다.


“…뭐지 여긴?”


뺨을 스치는 바람은 싸늘했고, 저 멀리서 ‘조선어 사용 금지’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가은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있던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1925년 조선의 현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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