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야, 거기 애! 뭐야, 옷이 그게 뭐냐?”
낯선 남자의 고함에 가은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교복 자켓에 운동화, 백팩.
1925년 경성 한복판에서 그녀의 차림새는 외계인보다도 눈에 띄었다.
“여기… 뭐야?”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인력거꾼이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고, 여자들은 고무신에 저고리를 입고 양산을 들었다.
길가 포장마차에서는 콩기름 냄새가 났고, 저 멀리선 ‘경성일보’라는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땅은 울퉁불퉁한 진흙길이었고, 연탄 연기와 마차 똥냄새가 뒤섞여 매캐했다.
가은은 뒷걸음질쳤다. 마치 VR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VR은 땀도 나지 않고, 이렇게 발이 시리진 않는다.
“이건… 꿈이 아니야. 진짜야.”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가은의 팔을 확 낚아챘다.
“가만히 있으면 눈에 띄어. 따라와.”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또래 여자아이였다. 눈빛이 야무졌고, 말투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혹시, 암호가… 들꽃이 바람을 만나면?”
“어?”
가은이 당황해서 멍하니 서 있자, 소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네. 착각했어. 우리 쪽 사람이 아닌 거지?”
“나, 난 그냥 길 잃었어… 진짜로!”
소녀는 한참을 가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옷차림 보면 너도 평범한 애는 아니겠지.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렇게 다니면 바로 끌려가.”
“왜?”
“너처럼 이상한 옷 입고 혼자 중얼대는 사람은 보통 밀정이거나 미친 사람이라서.”
“…고맙네, 그 두 가지 중에 고르라니.”
소녀가 피식 웃었다. “이름이 뭐야?”
“...가은. 강가은.”
“나는 이영희. 아마 너, 길 잘못 든 것 같네. 집으로 어떻게 가는줄은 알아?”
영희는 가은의 손목을 잡고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이끌더니 허름한 창고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이로 아이들이 쥐죽은 듯 숨죽이고 앉아 있었다.
“여기, 우리 쪽 애들이야. 아직 누구도 믿지 마. 특히 말 걸어오는 어른들. 절대.”
가은은 그때까지도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진짜... 이건 너무 리얼하잖아... 나 게임 아니고, 영화 찍는 거 아니지?”
“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여기선 진짜 총알도 진짜고, 체포도 진짜야.”
영희는 짧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우린, 진짜로 나라를 지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