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다락방은 눅눅하고 어두웠다.
가은은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거친 나무결 사이로 먼지가 떠 있었고, 코끝엔 낯선 냄새가 감돌았다.
“정신 좀 드나 보네.”
낯선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여긴... 어디예요?”
“말끝 보니 경성 사람도 아니고, 복장 보니 더더욱 아니고.
너,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가은은 입술을 다물었다.
‘꿈인가?’ 싶은 혼란 속에서, 등잔 불빛 아래 펼쳐진 풍경이 너무 생생했다.
“너 이름이 뭐야?”
“...가은이요. 강가은.”
소녀는 가은을 빤히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영희야. 여긴… 그냥, 안전한 곳이야. 적어도 지금은.”
그때 다락방 구석에서 발소리가 났다.
단정한 인상의 청년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아이가 그 ‘길 잃은 애’냐?”
“그래. 갑자기 나타났어.”
청년은 가은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차림도, 말씨도… 딴 세상 사람이네.”
“그쪽은 누구세요?”
“세진이라 해. 나도 숨어 지내는 처지지.”
가은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낡은 책, 펜촉, 격문 초안들, 그리고 숯으로 그린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엔 사진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가은은 조심히 다가가 속삭였다.
“이분... 혹시 유관순 열사예요?”
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 이 분을 아는구나.”
“형무소에서 돌아가셨죠... 서대문형무소.”
순간,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세진의 눈빛이 바짝 날카로워졌고, 영희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형무소라고…?” 세진이 낮게 말했다.
“네… 아까, 서대문형무소에 있다가—”
“거기서 어떻게 나왔는데?”
가은은 움찔했다.
“그냥… 견학 갔어요. 그러다... 태극기를 만졌고… 눈앞이 갑자기 번쩍하고...”
말을 더할수록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다.
영희는 숨을 멈춘 채 가은을 살폈고, 세진은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형무소에서 멀쩡히 걸어나온 자는, 대개 입을 다물거나, 다른 이름으로 살아.
근데 너는 말을 너무 쉽게 해.”
“그건… 저 진짜 그냥...”
가은의 목소리는 떨렸다.
“형무소에서 나온 사람이 적이 아닐 거란 보장은 없어.”
세진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릴 파는 자들은 늘 그 곳에서 나왔지.”
영희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잠깐만. 얘 말씨 들어봐. 우리 식이 아니야.
게다가 겁도 많고, 독립운동이 뭔지도 잘 몰라.
설령 연기라 해도 너무 어설퍼.”
잠시 침묵.
세진은 가은을 한참 바라보더니, 짧게 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시험 삼아 볼 일 있지.”
그는 책상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걸 전달해. 여운형 선생께.”
가은은 놀란 눈으로 받았다.
“그 이름, 들어본 적 있어?”
“...책에서 봤어요.”
세진이 작게 웃었다.
“책으로 본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겠지.
이건 숙제가 아니라, 네가 살아내야 할 역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