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가 알려주는 지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50대 후반인 그녀는 KFC에서 키오스크로 치킨을 주문했다고 했다
원하는 메뉴(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 각각 한 조각, 요즘 유행이라는 치킨에 피자를 섞은 켄치짜)를 모두 골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포장을 열어본 순간, 치킨은 모두 양념으로 둔갑해 있었고 코울슬로는 어디 갔는지 버터밥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켄치짜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영수증에는 받아온 음식과 같은 메뉴가 적혀 있었다고 했다
키오스크에게 배신을 당한 것인가? 잘 보이지 않는 눈이나 다른 메뉴를 누른 손가락을 원망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조건이 들어맞았던 때가 있다
눈이 잘 안 보여서 의지하던 안경도 두고 나간 상태였고 등 뒤에는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내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너무나 황당하고 당황했을 그녀를 공감했다
키오스크가 아니어도 불통하는 경우가 있다
어제 네스프레소 캡슐을 사러 간 매장에서 나는 같은 일을 경험했다.
내가 사려던 캡슐과 다른 종류와 수량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던 것이다
내가 본 그림과 내 손가락이 선택한 메뉴가 다른 것, 머리로는 이걸 생각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인지 부조화의 상태, 원하는 게 아닌데 '예스'라고 말하고 있는 부지불식의 순간.
사건이 끝난 후에도 되짚어 생각하고 곱씹게 된다
이러다 이중인격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에게 실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간단하고 가벼이 해내지 못한 상황들이 파도처럼 밀리고 쓸려나가며 뇌는 압력이 높아진다
결국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감정을 노출할 때도 있다
분위기가 엉망이 되면서 관계마저 흩어지기도 한다
잠은 두통으로 덮이고 시간은 미래의 불안을 쌓는 것이다.
오늘의 모닝페이지에 나를 일러준다.
고백이 아닌 고발이었다.
어쩌면 사건의 재구성이자 현실 인식이다
어떤 드라마 대사처럼 '보호'다
누명을 씌울 대상을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기계도 상대방도 손가락도 감각과 뇌의 판단력도, 또 급격히 떨어진 입맛과 좌절감도 체포대상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음을, 그게 그때의 나였음을 자술해보는 것이다
그래도 뒷걸음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도록...
한계 없이 높아지는 뇌혈관의 압력을 빼는 심호흡과도 같다
욕구와 소망으로 내 감정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나간 일은 잘 정리하고 새로 만날 관계들을 유쾌하게 하려고 고쳐 생각하는 일, 모닝페이지가 알려주는 지혜다
'지혜란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쩌다 놓이게 된 환경의 윤곽을 파악하는 특별한 민감성이다(소셜 애니멀 p407)'라는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말을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펜으로 꾹꾹 눌러써 두었다.
** 모닝페너자이저와 함께 모닝페이지 하기
1. 준비물 - 노트와 펜
2. '아무리 사소하거나 어리석거나 이상해 보이더라도 죄다 적을 수 있다.'
- 아티스트 웨이 p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