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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선배 Apr 07. 2024

수다쟁이는 필요한 순간에 말을 넣어두는 사람이다

갈링갈링 홈 아부지



작년 이맘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었다

홈스테이를 정했다는 말에 동생은 늙은 아줌마를 받아주는 곳도 있냐며 놀렸었다


어쨌든

나의 홈패밀리는 40여 년 전에 필리핀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는 노부부였다

Mr Dungo와 Mrs Dungo. 

Juses는 전직 priest였고 Rodelyn은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Juses는 이름마저도 사제가 될 운명이었을까?

그러나 사랑을 위해 사제의 길을 포기했다는 로맨틱가이였다

분 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분들이었다


로델린은 남편이 엄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엄격함의 이면에는 유머와 수다도 있었는데

그는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


새로 오신 신부님은 참 holy holy 하다고

강론시간에 모두가 잠들어 있더라며

성당에 다녀오면서 신부님 뒷얘기를 즐겼


마음이 우울해 있던 어떤 날이었다

푸틴을 사서 손에 들려주며 뜨거울 때 먹으라던

일을 기억한다

극강의 단짠소스를 뿌리고 덩어리 치즈를 잔뜩 올린 칼로리 폭탄 감자 튀김,

푸틴은 추운 겨울 나라인 캐나다 사람들이 애정하는 메뉴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자고만 싶었다

"내 차에서는 자는 걸 허락할 수 없다. 어서 먹어라"

푸틴은 내게 홈 파더의 말을 전해주었다

축 쳐진 마음을 깨우는 소리였다

그때부터 뭔가가 시작되었다

성당에서 집에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주문이 가능한 가게마다 들렀다

아이스크림, 파이... 계속 다음 메뉴가 내 손과 무릎에 올려졌다

속도를 내서 먹어야 했다


그렇게 먹고 나서 마음의 병, 아마 집에 오고 싶던 향수병을 회복했던 것 같다


가끔 위로는 말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다쟁이는 말 그대로 수다를 많이 떠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말을 넣어두는 사람일 거다

나는 수다를 이렇게 해석했다


갈링 갈링은 필리핀어로 시끄럽다. 말이 많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갈링갈링 홈파더는 손자가 자신을 닮아 갈링갈링하다고 즐거워하셨다


수다는 유전되는가?

수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수다에 놀라는 장면을 생각하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때쯤엔 그의 갈링갈링에 물들어 있었나 보다


홈파더의 또 다른 별명은 바비큐의 왕이었다

학생들이 모두 어학원에 간 시간에 미리 시즈닝 해둔 고기를 마당에 나가 그릴에 굽는 것이다

바비큐는 오래 걸리고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요리라는 걸 안다

그의 수다는 바비큐 같은 요리이기도 했다

먹이려고 수다를 하시는 걸까

수다를 하시려고 요리를 만드시는 걸까


과제가 없는 날이나 금요일 밤에는 마작 테이블에 모여서 게임을 하곤 했다

특별히 파더가 좋아하는 칩을 사러 옆방에 살던 리오나랑 마트에 가곤 했다

게임을 하려면 칩을 내놓으라는 홈파더의 농담은 게임 전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야칩이었다


어서 패를 내라고 재촉하기도 하고 올드팝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서로가 가진 패를 예측하며 약 올리기도 하고...

로델린이 만든 토마토살사소스를 얹어 먹으며 게임을 하는 동안 칩을 즐기는 것이었다


강력한 동기부여를 위해 가장 작은 크기의 동전을 걸었는데 게임의 승자는 거의 홈파더였다

우리가 가진 동전을 모두 따는 날은 어김없이 피자를 사 주셨다


어떤 날은 만년 꼴찌인 내가 이길 때까지 게임이 끝나지 않기도 했다


얼마 전 홈플러스에서 우리가 함께 먹었던 칩을 발견했다

수다를 부르는 칩

진짜 수다스러웠던 그날들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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