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도 내 것으로 삼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은 어찌할까?
강하고도 질기게 나 자신을 괴롭혔던 일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악기 선생님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책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마셜 로젠버그의 책, 비폭력대화.
어느 날 조언을 부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날밤 나는 소위 '이불킥'을 하며 후회에 빠지고 말았다.
어리석음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만큼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할수록 함께 했던 장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땐 느낌, 욕구를 알아주라고 했어.' 머릿속으로 비폭력대화의 4가지 단계를 생각했다. '이런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얘기를 듣는데 집중하기보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작정 위로하고 조언하고 '라테는 말이야'로 나아갔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녀의 제안에 우쭐해져서 갑자기 해결사가 된 듯 그랬던 것 같다. 거기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조언자가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아는 척, 잘난 척 척척박사로 변신한 거였다.
장자의 말씀이다
'진정한 공감이란 자신의 전체로 듣는 것이다'
뭔가 해준다는 생각을 멈춰!
조금 진정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긍정적인 면은 없었을까?
일단 내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은 그동안의 만남으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건 아닐까?
다음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으로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을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답은 스스로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내가 뭔가 해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어리석었다.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과 서로 취약성을 드러냄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비밀의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순간, 조언, 지지, 연결성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단, 적합한 사람을 선택했을 때의 이야기다.' - 비밀의 심리학 p158
그녀와 함께 한 날은 비 오는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아늑한 카페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셨고 마주 앉아 있었다. 미술관도 소개해주었다. 그다음 주에 우리는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이불킥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내재화와 인격화, 곧 인성의 변화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니 책이 내게 오는 건 배움을 시작하라는 뜻인 것이다. 나는 지난 경험을 통해 지식으로 살아가기보다 내재화하기에 더 큰 뜻을 두라는 의미를 깊이 알게 되었다.
삶의 문제는 늘 우리 옆에 있다. 그러니 어찌 이불 킥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또 이불킥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불킥 없이 산다고 좋은 삶일까? 잦은 이불킥에도 견디는 힘, 회복하는 탄력 그리고 사람이 다가오는 일, 공유의 시간에 진심으로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반대로 부끄러울 때, 미안할 때 이불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보다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이불을 차는 동안 몸과 마음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내수용 감각이 발달할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그 사건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일로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그렇다면 이불킥은 하나의 의식이 되고 새 아침을 데려올 것이다.
이제 킥하는 대신 이불은 잘 덮고 잠에 들기로 한다
책과 사람들 속에서 만날 자신을 위해...
그런데 킥하기에는 어떤 이불이 좋을까?
가벼운 이불이라면 더 재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