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
여우와 신 포도
여러 차례 먹고 싶던 밤빵을 검색하다가 그만두었다
결국 어젯밤 산책에서 돌아온 손에 빵이 들려있었다
입은 밤늦게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눈금이 훅 늘어난 체중계
나는 너무 분명하게 이유를 알고 있었다
건강하게 살려면 빵을 끊어야 한다는 유튜브 영상은 의도와 무관하게 계속 이어졌다
아직 빵이 남아있다
언제 먹어야 되나? 빨리 먹어서 없애야 할까? 여기서 멈추어야 옳은가?
사는 동안 원하는 일이 꼭 이롭지만은 않다는 사실. 이럴 때 나는 신포도를 앞세우는 여우가 된다
그렇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 꼭 슬프기만 한 걸까
이야기가 계속된다면 배고픈 여우의 눈에 띈 신포도는 과연 익기나 하는 것일까? 다 익은 열매를 어쩔 수 없이 설익은 색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힘껏 뛰어도 손에 닿지 않는다면 나무 아래서 기다릴까?
이렇게 더운 날이 계속되면 금방 익을 텐데
푹 익으면 저절로 떨어질 거야
그런 상태라면 얼마나 맛있을까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기도 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익기도 전에 떨어져서 썩어버리는 건 아닐까
여우와 신포도는 어쩌다 이렇게 얽혔을까
포도를 포기한 건 오직 여우의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아직 배가 덜 고픈 이유일까
이야기는 여우를 영원히 갈등과 회피에 묶어두는 것이다
여우는 꾀가 많은 동물이라서 아니면 고약한 동물인 까닭에 인심을 잃은 것인가?
갑자기 나는 여우의 탈을 쓰고 동병상련을 느끼려 하고 있다
눈앞에 두고도 가질 수 없는 욕망과 현실로 느끼는 고통.
그 대상을 정하기에도 억울함은 애매하다
신에게, 키가 커서 닿을 수없는 포도나무에게,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없는 다리에게, 아니면 아직 덜 익었다고 결론 지은 포도에게, 어디를 향해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여우는 체념의 말을 제일 먼저 익히고 자신에게 들려준 것이다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새나 쥐 같은 동물들과 상의하고 같이 따 먹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 열매가 포도알처럼 보이는 다른 독성 씨앗이었다면 여우는 거짓말쟁이도 나약한 핑계대장도 아니었을 텐데
여하튼 일개 독자는 아쉬움으로 신포도의 덫에 걸린 여우를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숲의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여우에게 다른 먹거리가 넉넉했더라면
만약 여우가 단식과 절제를 삶으로 받아들인 주인공이었다면
그런데 입맛이 특별해서 신포도를 좋아하는 여우라면?
당장 집에 먹을 것을 기다리는 아기 여우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거나 엄마였다면?
나무를 세차게 흔들거나 돌멩이를 던져봤더라면,
덩치 큰 친구를 데려왔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면서 오히려 빠르게 손절해야 하는 판단력과 융통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후회에서 늘 상황을 탓하고 여우가 되고야 마는 나는 어쩐지 그 포도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진다
익어도 껍질의 색이 변하지 않는 청포도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꼬리를 아홉 번 바꾸고 불여시가 되어 포도대신 다른 주인공을 물색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읽는다
'인간의 절망에는 끝이 없고 포기로는 절망을 끝내지 못한다. 스스로 기운을 차려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