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이 남긴 빛 한자락
감아버린 눈 앞의 까만 칠판에
내일 할 일을 줄 세워가며 하나씩 작성해 본 적이 있는지,
작성해 놓은 한줄한줄 밑줄을 쳐 가며
이 일에 '완료 체크'를 표시하며 만족해 할 나를 기대하며
두근거려 본 적이 있는지
상상으로 내가 작성한 대본으로 연기와 감독을 함께 하는 1인 드라마를 만들고는,
그 드라마가 방영될 내일을 상상하면서 잠 못 이루던 밤이 있는지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 오늘 만날 인연들에 대해 두근거렸는지,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나를 오늘 일어날 해프닝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이정도면 화장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하며
밑도 끝도 없는 근자감에 선크림만 바르고 밖으로 나간 적은 없는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깨끗하다 즐거워 하며,
구름이 두둥실 생겨나면 그림같아! 하며 사진을 찍어대다가,
어느덧 흐려지면 지금이 돗자리 필 때야! 하며 잔디밭에 드러 누웠다가,
비가 내리면 카페로 달려가서는 기세등등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뿌듯해 하던,
친구의 작은 핀잔에 '내가 쟤한데 뭘 잘못한게 있나?' 하며 지구 내핵까지 동굴을 파다가,
"생일 축하해~"하는 짧은 메시지에 행복감에 성층권까지 부풀어 오르던 적이 있는지
봄은 꽃이 피어 좋고
여름엔 쨍한 햇빛에 비친 파란 바다가 좋고
가을은 빨강 노랑 단풍을 보며 좋다가
겨울엔 발목까지 쌓인 눈에 행복해 하던
손바닥을 펼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실망하다,
손 너머러 보이는 끝이 없이 펼쳐진 길을 바라보며 가슴 두근거리던
인생의 필름 속에 가장 반짝이던 스물 하나,
그 반짝임을 내일의 나에게도 기대하는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