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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Apr 10. 2022

인생의 콜라주

아그레 글요일


글감 : 파편


하도 오래전에 읽어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 속에서 '몽환의 조각들'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오랜 수명을 가진 드래곤들이 잠시 모습을 바꿔 인간 세상에 들어와 잠깐 살다 가는 시간을 이렇게 불렀던 거 같다.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꿈꾸다 보낸 것 같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낸 인간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시간을 잊지 못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다양한 존재들이 가진 시간의 파편들이 모인 콜라주와 같다.

타인은 내 인생에 하나의 조각을 남기고 가며, 난 그 조각들을 모아 내 인생이란 큰 작품을 만들어 간다.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은 때론 부드럽고 가벼운 헝겊일 수도 있고, 날카롭고 베이기 쉬운 유리조각일 수 있다.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이것들을 난 가장 어울리는 곳에 이어 붙여 내 캔버스를 채워가고 있다.

처음엔 8절지의 작은 스케치북이어서 몇 개의 조각만 있으면 금방 채워질 것 같았고, 그 중 한가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내 도화지가 싫은 것으로만 가득찬 것으로 보여 슬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 도화지가 점점 4절,  2절 캔버스로 점점 커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 넓은 하얀 바탕에 무엇을 채울까 기대하며 두근거릴 때도 있었지만, 문득 이미 채워진 부분을 보며 다른 것으로 채워볼 껄 하며 아쉽고 후회되는 일도 있다.

항상 기대에 차 눈이 반짝일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일에 파묻혀 침몰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여전히 하얀 바탕과 온갖 파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경계면에 서있다. 이 경계에서 여기에는 이 재료가 좋을까? 이 색깔이 좋을까 고민하며 하나씩 메워가고 있다.

가끔 마음 편하게 누가 나 대신 이 백지를 채워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다 채워 놓으면 돌아보았을 때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꼭 미래를 위해 사는 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것을 의미가 없다고 보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난 몇천년을 사는 드래곤들이 아닌 정해진 시간을 사는 존재이니까.

이 작은 조각에도 그 시간의 나를 기억하며 재미있어 할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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